정몽헌(鄭夢憲·55)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4일 새벽 서울 현대계동사옥 본관에서 투신 자살했다.정 회장은 현재 검찰이 수사중인 대북비밀송금 및 현대비자금 '150억원+α'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핵심 인물이어서 이 사건들에 대한 진상규명 등에 난항이 예상된다. 또 최근 활기를 띠고 있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조성 등 현대아산측이 수년간 추진해왔던 대북 경제협력 사업의 차질도 예상된다.
이날 새벽 5시42분께 서울 종로구 계동 140의 2 현대계동사옥 본관 뒤편 주차장 앞 화단에서 정 회장이 쓰러져 숨져 있는 것을 청소원 윤모(63)씨가 발견, 경비원 경모(51)씨를 통해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정 회장은 밤색 하의와 검정색 T셔츠 차림으로 반듯한 자세로 쓰러져 있었으나 큰 외상은 없었다.
또 12층의 정 회장 집무실 창문이 열려 있었고, 집무실 원탁 테이블 위에는 안경, 시계와 함께 부인,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등 앞으로 쓴 A4 용지 4장으로 된 유서 3통이 봉함된 채 놓여 있었다. 유서에는 "모든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해 달라", "나의 유분을 금강산에 뿌려 달라"는 내용과 함께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었다.
경찰조사결과 정 회장은 전날인 3일 밤 강남의 한 일식집에서 가족, 친구 등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정 회장은 식사가 끝난 뒤 가족을 먼저 보내고 친구인 박기수(54) 전 현대상선 미주본부장(전무)과 함께 술을 마셨다.
정 회장은 박 전무와 헤어진 뒤 밤 11시52분께 현대계동사옥으로 와 운전기사 김모(57)씨에게 "20∼30분 정도 있다 오겠다"며 자신의 집무실로 올라간 뒤 새벽에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 회장은 최근 대북 비밀송금 사건과 관련, 특별검사팀의 수사를 받은 데 이어 현대비자금 '150억원+?' 사건으로 출국금지된 상태에서 지난달 26일과 31일, 이 달 2일 등 3차례에 걸쳐 대검 중수부에 소환돼 출퇴근 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집무실 내부에서 유서가 발견됐고 창문이 열려 있는 점, "사체 발견 당시 몸이 굳어 있었다"는 119소방관의 소견 등으로 미뤄 정 회장이 이날 새벽 2∼3시께 창문을 열고 투신 자살한 것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사건을 지휘하고 있는 서울지검은 이날 오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을 실시, 연구소측으로부터 "추락 외에 다른 외력(外力)에 의한 사인 증거가 없고, 나무에 걸렸다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받았다.
한편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김상균·金庠均 부장판사)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사망신고서가 재판부에 접수되는 대로 공소기각 결정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 회장의 유족으로는 부인 현정은(48)씨와 1남2녀가 있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정상원기자 ornot@hk.co.kr
이준택기자 nagne@hk.co.kr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장례식은 현대아산 회사장으로 5일간 치러진다.
현대그룹은 4일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발인은 8일 오전 7시, 영결식은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에서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윤규(金潤圭) 현대아산 사장은 "가족회의 결과 장지는 경기 하남시 창우리선영으로 결정했다"며 "하지만 고인의 유언에 따라 유품 등을 금강산으로 모시기 위해 북측과 협의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은 이날 오전 강명구(姜明九)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이 낭독한 발표문을 통해 "현대 임직원들은 정 회장의 갑작스런 타계에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그러나 남북경협 사업의 큰 뜻과 유지를 받들어 성실히 추진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