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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70>아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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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70>아벨

입력
2003.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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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8월5일 노르웨이 수학자 닐스 헨리크 아벨이 오슬로 근교에서 태어났다. 1829년 몰(沒). 어제의 주인공이었던 해밀턴처럼 아벨도 조숙한 천재였다. 그러나 아벨은 세 살 아래의 동료 수학자보다 훨씬 불운했다. 22세에 더블린 대학 교수가 된 해밀턴과 달리, 아벨은 27세로 죽기까지 대학에 자리잡지 못했다. 베를린 대학에서 아벨을 교수로 채용했다는 편지가 그의 집에 도착한 것은 그가 죽고 이틀 뒤였다.아벨의 불운은 가난에서 시작됐다. 허기 속에서 성장기를 보내면서도 수학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던 그는 18세에 아버지를 여읜 뒤 어머니와 동생 다섯을 보살피기 위해 가정 교사를 전전해야 했다. 불운은 가난 바깥에서도 왔다. 아벨은 19세에 당대 수학자들을 괴롭히던 5차 방정식의 대수적 일반 해법(4칙 연산과 거듭제곱근 풀이만을 사용한 해법)을 파고 들어 그 불가해성을 증명했다. 그는 이 논문을 자비로 출판해 당시 최고의 수학자 가우스에게 보냈지만, 가우스는 이 무명 청년의 논문을 읽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수학사가들은 아벨의 이 불운을 그보다 아홉 살 아래 수학자 에바리스트 갈루아의 불운과 흔히 병렬시킨다. 21세로 죽은 갈루아 역시 프랑스 학사원에 보낸 논문들이 담당자들의 부주의로 서랍에 처박히는 바람에 무명으로 생을 마감했다. 우연이겠지만, 아벨이 초석을 놓은, 대수방정식이 대수적 해법만으로 풀리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명확히 기술한 사람이 갈루아다.

아벨보다 스무 살 아래의 프랑스 수학자 샤를 에르미트는 요절한 선배를 기리며 "그가 남긴 업적으로 수학도들은 앞으로 500년 동안 바쁘게 지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닌게아니라, 오늘날 수학도들은 아벨 적분, 아벨의 정리, 아벨 방정식, 아벨군(群) 등의 개념을 익히느라 바쁘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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