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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가족 문소리 / 소리없이 독한 여자 "베니스랑 바람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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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가족 문소리 / 소리없이 독한 여자 "베니스랑 바람났어요"

입력
2003.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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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가 사랑하는 여자'. 베니스영화제가 문소리(29)를 다시 초대했다. 작년 '오아시스'로 신인여우상을 안겼던 베니스영화제는 문소리가 주연을 맡은 '바람난 가족'(감독 임상수)을 공식 경쟁부문에 초대했다.시어머니부터 며느리까지 모두 바람이 난, 붕괴된 가족의 초상화를 그린 화제작 '바람난 가족'은 임 감독의 말대로 은호정 역의 문소리가 바라본 세계다. 문소리는 이웃집 고등학생과 바람이 나고, 아이를 잃고, 무책임한 남편을 '아웃' 시키는 은호정 역을 맡아 도발적인 여성상을 보여준다. "정작 연하남은 좋아해본 적이 없고, 호정의 모성애와 성숙함을 존중하며, '가족의 끈'이 보다 유연해지길 바란다"는 문소리. 베니스가 그녀를 선택한 이유를 그녀에게 물었다.

베니스의 편애인가?

"생각해본 적 없다. 날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던데, 가도 아는 척도 잘 안 하고 (웃음). '아메리칸 뷰티'를 보며 미국 가정을 이해하듯, 한국 가정의 이야기를 이해하는구나 싶어 반갑다. 베니스에서 상타고 돌아온 뒤에도 난 예전 모습 그대로다. 할머니 경로당 잔치는 해드렸지만."

섹시해서?

"평소 화장도 안 하고 '츄리닝' 바람에 돌아다닌다. 미인도 아니지만 '난 왜 이렇게 생겼나' 하고 고민도 하지 않았다. 성형했다는 소문이 났는데 난 변한 게 없다. 그리고 모든 여자가 다 섹시하지 않나? 은호정의 섹시함도 사는 모습을 찬찬히 보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옆집 고등학생 지운(봉태규)이 발견한 것처럼. 학교 다닐 때도 남학생들은 내게 무심했다. 지운이처럼 솔직하게 얘기를 했으면 다 받아줬을 텐데…. 호정이는 '고삐리'까지 섭렵했는데 난 갈 길이 멀다(웃음)."

그럼 어떤 매력?

"참하게 생겼다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 농활 가서는 10대부터 40대까지 '커버'했다. 서울 아가씨 같지 않고 서글서글하다는 거다. 독하다는 사람도 있는데 오래 달리기나 오래 매달리기 잘 하는 걸로 봐서는 인내심은 있는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은 '심하게 독하다'고 하더라. 그러니 의외성이라고 할까. 전혀 섹시할 것 같지 않은데 섹시하다던가, 참한 줄 알았는데 털털하다던가. 뻔한 것 보다는 재미있지 않은가? 호기심도 생기고."

영화 속 대사가 야해서?

"무안해서 시사회도 제대로 못 봤는데, 모두 감독이 심혈을 기울인 대사다. 무용연습실에서 지운과 함께 있다가 지운 아버지에게 들키는 장면에서 'X됐다'라고 한 것, 지운과 산에 오르는 장면에서 '쉬었다가요, 학생'이라고 말한 것이 인상에 남는다. 전자는 내가 만든 거고, 후자는 배우들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관객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만큼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감독과 친하게 지내니까 서로를 잇는 좁은 길이 나중엔 16차선 도로로 뻥 뚫리더라. 영화 끝났으니 감독이 연락도 안 하겠지만(웃음)."

샤론 스톤처럼 벗어서?

"영화가 벗는 3류영화인줄 알고 장소 섭외가 어려운 적도 있었는데, 사실 야하긴 야하다. 그래야 관객도 들 테니(웃음). 하지만 당연히 '공사'(은밀한 부위를 가리는 것)는 하고 찍었다. 인간 본연의 것을 헤쳐가면서까지 그랬겠나. 남편 주영작(황정민)과 정사 뒤에 벌거벗고 혼자 다니는 장면은 꽤 긴 장면인데 밤을 새며 15 번이나 촬영을 반복했다. 카메라와 조명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야 공사한 것처럼 보이지 않고, 심의도 통과할 수 있다. 조금만 잘못 돼도 다시 찍어야 한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 어떤 영화?

퇴원하는 시아버지를 태우고 오라는 남편 주영작(황정민)의 말에 아내 은호정(문소리)은 이렇게 답한다. "각자 아버지는 좀 각자가 해결하자." 간암 진단을 받은 시아버지(김인문)가 담배를 찾자 이번에는 시어머니(윤여정)가 담뱃갑을 휙 던지며 이렇게 말한다. "실컷 피우고 일찍 죽어."

'바람난 가족'(감독 임상수)은 한국 영화 사상 초유의 '콩가루' 집안을 보여준다. 키워드는 물론 바람, 즉 불륜이다. 시어머니는 남편 상을 치르자마자 "나 사귀는 남자 있다, 오르가즘이란 거 처음 느꼈다"고 선언하고, 변호사인 남편은 기이한 포즈로 애인과 섹스하기를 즐긴다. 아내는 호시탐탐 자신을 엿보던 옆집 고교생(봉태규)을 데리고 놀기 시작한다.

'바람'이 일상의 안온함을 유지하며 일탈 본능과 타협하는 길이라면, 이 영화의 바람은 바람이 아니다. 늦은 밤 애인에게 전화를 거는 남편을 목격한 아내는 "당신 맘을 그렇게 털어 놓는 사람이 있어 좋겠다"고 말한다.

임상수 가족은 늘 '명제'를 부정한다. '처녀들의 저녁 식사'에서 '처녀성'을 배제했고, 가출 청소년을 다룬 '눈물'에서 버릇없는 아이들보다 더 나쁜 것은 어른들이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바람 난 가족' 은 '바람'이 아니라 '가족'에 방점이 찍혀 있다. 임상수 식으로 말하면, 가족이란 '체면'이나 '염치'를 한 꺼풀만 벗겨내면 그저 지긋지긋한 타인일 뿐이다.

가족이 그저 타인일 뿐이지만 현존하는 가족 체계는 공동 책임을 지우려고 한다. 주영작과 은호정 부부의 입양아의 죽음은 타인 같았던 가족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주어지는 듯하지만 역시 그 책임은 무고하게 죽은 생명의 전적인 몫임을 암시한다.

가족의 일탈적 대사와 에피소드는 그간 한국 영화가 제공한 안온한 웃음 대신 알싸한 웃음을 던진다. 주조연에 아역의 연기까지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늘 인내할 수 있는 경계에서 한발짝 더 나가는 임상수 감독의 충격 요법은 이번에도 그대로다. 입양아 아들의 죽음을 다루는 방식은 끔찍하다. 책임감이 개입되지 않은 잔인함은 가학일 뿐이다. 18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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