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전역 약 3,427㎞를 23일간 일주하는 프랑스도로일주사이클대회(투르 드 프랑스)는 대회가 진행되는 기간 내내 화제가 만발하고 그 화제에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체가 열광한다. 창설 100주년을 맞은 올해 대회에서도 감동적인 화제들이 꽃을 피웠다. 지난달 28일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막을 내린 이 대회에서 랜스 암스트롱(31.미국)은 83시간 41분12초의 기록으로 대회 5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생존율 50%의 고환암을 극복한 그는 99년 이 대회 첫 우승을 하면서 '인간승리'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이어 올해까지 5연패했으니 그에 대한 경의는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 대회에서 또 다른 선수가 영웅으로 탄생했다. 독일의 얀 울리히. 그는 15구간 레이스에서 암스트롱이 사고로 넘어질 때 15초 차이로 2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는 1위로 뛰어오를 절호의 기회에 암스트롱이 다시 일어나 달릴 때까지 기다렸다. 유럽의 언론들은 이런 울리히를 '진정한 영웅' '페어플레이의 챔피언'이라고 극찬했다. 암스트롱에게만 3차례 패하는 등 이번 대회까지 모두 5번의 준우승에 그쳐 누구보다 우승에 목말랐던 그는 그러나 "그런 사고로 우승자가 결정되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며 "페어플레이는 사이클경기에서 자전거와 마찬가지로 필수요소일 뿐"이라고 말했다.
■ 중국의 루쉰(魯迅)은 페어플레이를 논하는 글에서 "용감한 권법가는 이미 땅에 쓰러진 상대는 결코 더 이상 때리지 않는다. 단 상대 역시 용감한 투사라는 조건일 경우에 한해"라고 했다. 패배한 뒤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후회하며 자취를 감추거나 아니면 당당하게 복수하러 오는 투사여야 대접을 해주지, 그렇지 않은 상대일 경우 못된 짓을 다시 못하도록 두들겨 패도 된다는 주장이다. 페어플레이의 대상이 되려면 그만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울리히는 암을 극복하고 재기한 위대한 선수의 실수를 틈타 승리하는 것은 비겁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 요즘 우리 주위에서 페어플레이를 구경하기 힘들다. 정치판, 노사, 정부와 주민 사이에 수많은 대결구도가 형성돼 있지만 어디 하나 페어플레이는 보이지 않는다. 굿모닝시티 사건, 청와대부속실장 향응파문, 꽃동네 사건 등 더티플레이 일색이다. 돌아올 피해를 알면서도 큰 용기 갖고 대선후보 경선자금을 공개한 김근태 의원이나 자신을 희생하며 철로 위의 어린이를 구한 철도원 김행균씨 등이 돋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사회가 그나마 지탱해나가는 것은 이런 소수의 용기 있는 페어플레이어 때문일 것이다.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자.
/방민준 논설위원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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