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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만에 소설집 "낙원? 천사?" 낸 윤흥길씨/"세상의 그늘이 더욱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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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만에 소설집 "낙원? 천사?" 낸 윤흥길씨/"세상의 그늘이 더욱 짙어졌다"

입력
2003.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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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를 보고 흐르지 않는 눈물을 탓하는 것은 오래된 얘기가 된 듯하다. 그것은 눈을 낮추고 등을 굽히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장면이 됐다. 윤흥길(61)씨는 몸을 웅크려 세상의 그늘을 봐 왔다. 그늘의 폭은 더 이상 넓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어두운 빛깔은 작가가 보기에 더욱 짙어졌다.윤흥길씨가 다섯 번째 소설집 '낙원? 천사?'(민음사 발행)를 냈다. 16년 만의 창작집이다. 지난해 회갑을 맞은 그가 "유난스러운 회갑연 대신 계획한 것"이다. "선친께서는 할아버지 얼굴을 못 보셨다. 나도 할아버지 얼굴을 못 보았다. 내 자식들도 태어나서 할아버지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이처럼 단명을 물려받은 우리 집안에서 몇 세대 만에 처음으로 내가 회갑을 맞게 됐다. 손자도 못 본 처지에 쑥스럽게 회갑연이라니 하는 생각을 했다가 내가 맞은 회갑이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시는 일종의 특별상여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편소설 3편을 묶은 '낙원? 천사?'는 회갑 기념 작품집이 됐다.

표제작은 대학 캠퍼스 이곳 저곳을 떠돌면서 지낸 부랑소년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학보사 기자가 식당 아줌마, 총학생회장, 교무처장 등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과 자신이 회상하는 소년에 대한 짧은 추억이 소설의 얼개가 됐다. 보육원 출신 소년 '오군'은 학교식당에서 밥을 얻어먹고 강의실에서 잠을 자고, 도서관 자리를 맡아주고 연애편지를 써주는 일로 돈을 받으면서 삶을 이어갔다. 캠퍼스 안 사람들은 소년을 '천사'라고 불렀고, 소년은 캠퍼스를 '낙원'으로 믿었다. '낙원' 밖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했던 소년은 그러나 겨울밤 얼어죽었다. 몸을 녹이려고 쓰레기를 모아 불을 지피다가 순찰 중인 경비원에게 쫓겨, 운동장에 내몰려 맞은 죽음이었다. 낙원 안에서 죽은 소년의 죽음을 기록한 글은 "복잡다단한 세상을 단순히 선악 이분법으로만 파악하려 한다"는 이유로 신문에 게재되지 못했다. "그곳은 당최 그가 머물 만한 장소가 못되었다. 평생을 눌러 지낼 만한 낙원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그를 용납할 줄 모르고 배척만 하는 땅에다 계속 그를 붙들어맨다는 건 도무지 사람의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보기에 이 세상이 그렇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작고 낮은 이웃을 내칠 정도로 가차없는 곳이다. 운동권 학생이 동지들의 은신처를 불었다는 죄의식으로 방화를 저지르도록 만드는 곳이다('산불'). 값싸게 번쩍거리며 따뜻한 손길과 눈물을 사그라뜨리는 세상이다.

윤흥길씨가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지 35년 째. 그는 '장마' '황혼의 집'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 등을 통해 분단이 한국 현대사에 낸 상처의 속살을 내보였으며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완장' '낫' 등에서 천민자본주의로 황폐해진 현대인의 정신을 고발했다. 입시생의 필독서가 된 '장마'는 장마가 드는 여름이면 판매 부수가 훌쩍 오른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명작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그런 그가 "오가리가 들 정도로 문학의 기운이 쇠해진 오늘의 정신의 불모 풍토"를 안타까워한다. 그러고 보니 낙원 같은 세상 속 천사는 오군만이 아니다. 문학 또한 그러하다. 오군처럼 발붙이지 못하고 떠돌면서도 한사코 세상에 머물기를 소망하는 천사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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