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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69>해밀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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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69>해밀턴

입력
2003.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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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년 8월4일 아일랜드의 수학자 겸 물리학자 윌리엄 로언 해밀턴이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1865년 몰(沒). 해밀턴은 수학의 역사에 점점이 흩뿌려져 있는 조숙한 천재들 가운데서도 퍽 두드러진 예에 속한다. 19세에 더블린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 수석으로 입학할 때까지 그는 정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지만, 3년 뒤인 1827년에 파격적으로 이 대학의 천문학 교수로 선임되었다. 이듬해에 그가 '광선계의 이론' 제1부를 발표해 광학의 수학적 바탕을 마련하자, 영국 자연과학계는 또 다른 뉴턴이 나타났다는 흥분으로 들썩였다.물론 해밀턴이 해석역학을 비롯한 몇몇 분야에서 특기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고 해도, 자연과학의 역사에서 그를 뉴턴에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조숙에서는 해밀턴이 뉴턴을 훨씬 앞질렀다. 이미 세 살 때 영어를 쉽게 읽을 수 있었던 해밀턴은 다섯 살 때 라틴어·그리스어·헤브라이어를 읽고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드라이든이나 밀턴의 시를 줄줄 외웠다. 여덟 살이 되자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를 읽을 수 있었고 라틴어로 육보격(六步格) 시를 지었다. 열 살이 채 못 되어 아랍어와 산스크리트어를 읽고 쓸 수 있었고, 열네 살 때는 더블린을 방문한 페르샤 사절에게 보내는 환영사를 페르샤어로 썼다. 해밀턴은 태어날 때부터 10대 중반까지 해마다 외국어 하나씩을 정복했던 셈이다.

해밀턴을 이런 언어들의 바다로 밀쳐넣은 것은 그의 백부 제임스 해밀턴이었다. 그러나 제임스 해밀턴은 조카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입증하는 기쁨을 누리느라 자연과학의 진보를 늦췄다는 비판도 받을 만하다. 윌리엄 해밀턴이 학문적으로 별 의미가 없는 외국어 학습에 성장기를 탕진하지 않았다면, 그가 과학사에 남긴 업적은 실제보다 훨씬 더 컸을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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