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자와 데쓰로 지음, 장석봉 옮김 궁리 발행·1만2,000원일본 교토(京都)대학 영장류연구소는 세계적 권위를 자랑한다. 이마니시 긴지(今西錦司) 이래 이타니 준이치로(伊谷純一郞), 가와이 마사오(河合雅雄), 마쓰자와 데쓰로(松澤哲郞) 등의 학자들이 학맥을 이으며 세계 영장류학을 선도해 왔다. 동물사회의 문화 전파와 계승을 입증한 '고구마 씻는 원숭이'의 발견이 바로 이마니시팀이 올린 개가였다. 동물사회의 구성원에 일일이 이름을 붙이고 장기간 관찰하는 방법론을 정착시킨 것도 이 연구소가 중심이었다.
1978년 마쓰자와 교수의 주도로 시작된 '아이 프로젝트'는 '고구마 씻는 원숭이' 이래 다시 한번 세계의 눈길을 끌고있다. 연구가 시작될 당시 '아이'는 두 살짜리 암컷 침팬지였다. '아이'는 도형을 조합한 가상 언어를 학습, 한자나 색깔 등 100여 개의 단어를 외우고 0에서 9까지의 숫자의 대소는 물론 0의 개념을 이해했다. '천재 침팬지'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다루는 침팬지' 등의 명성을 얻었다. '아이'는 사랑 애(愛)의 일본식 발음이자 인공지능을 뜻하는 영어의 약자 'AI'(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따라서 '아이 프로젝트'는 천재 침팬지의 행동 연구에서 지능의 진화, 인지과학 연구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인공수정을 거친 '아이'가 2000년 4월 수컷 새끼 '아유무'('걷다'의 뜻)를 낳으면서 연구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 들었다. 천재 침팬지의 2세가 엄마의 능력과 지식을 어떻게 이어받는가를 살피는 세계 최초의 침팬지 세대간 전승 연구가 시작됐다. 약 500만년 전 인간과 같은 조상에서 갈라졌고, 전유전자(게놈)의 1.23%만이 인간과 다를 뿐인 침팬지의 성장·학습 과정을 통해 인간 진화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연구이다. 연구소의 다른 암컷 침팬지인 '구로에'와 '판'도 각각 2000년 6월과 9월에 암컷 새끼 '구레오'와 '파루'를 낳아 천재 2세 침팬지의 학습의 결과가 또래 집단에 어떻게 전파되는지도 관찰할 수 있게 됐다.
마쓰자와 교수는 이 책에 '아유무'의 출생부터 약 2년간의 성장 과정을 담았다. 침팬지를 사람처럼 '엄마' '아기' '아들' '딸'로 부르는 그는 따스한 눈길로 이 '육아일기'를 썼다. '아이'와 '아유무' 모자의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구로에'와 '구레오', '판'과 '파루' 모녀의 이야기도 함께 다루었다. '아유무'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생후 9개월에 색깔과 문자의 간단한 조합을 이해했으며 엄마의 컴퓨터 조작을 조금씩 흉내내기 시작했다. 좀 더 나이가 먹으면 보다 어려운 과제에 도전할 것이다.
학습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침팬지 엄마는 아이를 가르칠 때 야단치는 법이 없다.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고 아이가 제대로 따라 할 때까지 묵묵히 기다린다. 또 남의 아들, 딸이라고 차별하지도 않는다.
사람의 아기처럼 '배냇웃음'을 짓고, 낯선 침팬지나 사람을 경계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또래들과 놀이를 통해 '문화'를 공유하는 침팬지 아기들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이래저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책이다.
/황영식기자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