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나의 여름방학은 책과 함께 시작되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일본식 가옥에는 집 중간에 복도가 있었는데 양쪽 방의 창문을 열어두면 그 곳이 제일 시원했다.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어둑한 대신 항상 서늘한 기운이 감돌던 곳, 거기서 책을 한 권씩 읽다 보면 내 마음은 십오 소년을 따라 무인도에 표류하거나 집 없는 천사의 레미와 함께 길거리 악사가 되어 프랑스를 방랑하고 '엄마 찾아 삼만리'의 마르코를 따라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까지도 갔다. 그러나 먼 곳에 대한 동경만 가득했을 뿐, 현실의 나는 기껏 역에 나가 기차를 타는 것 이상의 가출 계획은 세우지 못하는 겁 많은 아이였다.아이들을 지나치게 묶어놓는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나의 산에서'를 읽어 보자.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집 나가기'란 과업을 용감하고 지혜로운 소년 샘 그래블리가 대신해줄 것이다.
독서를 통해 숲 속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갖춘 샘은 캐츠길 산으로 가서 큰 나무를 파서 집을 만든다. 매를 길들여 사냥을 하고 사슴 가죽을 직접 무두질해 옷을 만들어 입고 사냥꾼이 놓친 사슴 고기와 물고기를 훈제해 겨울에 대비한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준비를 완벽하게 해놓아도 샘은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낀다. 눈보라가 밀려오는 겨울날의 산, 야생동물은 이미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죽음처럼 적막한 숲에서 샘은 안락한 도시의 가로등과 가족이 모여있는 따뜻한 집을 떠올린다. 그렇지만 이런 어려움도 독립된 삶을 향한 샘의 의지를 꺾지는 못한다.
어른이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나는 이 책에서 샘을 대하는 어른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샘의 생활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영어교사 밴도, 음악가 아론, 샘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책을 보러 찾아가는 도서관의 직원 터너, 이들은 아무도 열 다섯 살짜리 가출 소년을 집으로 돌려보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밴도는 신문이 가출소년 기사로 떠들썩할 때 "기자들이 너무 많이 알아내면, 뉴욕 신문사에 전화해서 방향을 좀 틀어 놓지"라고 말한다. 5월에 집을 나간 아들을 눈 덮인 겨울 산에서 만난 아버지는 "다른 길로 돌아가야겠어. 누군가 내 발자국을 따라와서 너를 찾아낼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안 되지"라고 말한다. 알고는 있지만 실천은 어려운, 아이들 영역 넓혀주기가 아닐 수 없다.
샘은 산에서 혼자 사는 방법을 배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된 것이다. 이제 샘의 숲 속 생활은 사람들이 다 알게 되고 도시가 다가온다. 샘은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게 될까?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읽을 수 있고 어른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대구가톨릭대 도서관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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