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신간 중 종교학자 정진홍의 '고전, 끝나지 않는 울림'(강 발행)을 집어들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삼국유사' 등 동서양 고전 8종의 독서 노트인데, 손에 잡히는 아담한 크기로 만들어졌고 표지 모양새가 예쁘장하다. 책에 담긴 내용도 만족스럽다.그런데 아뿔싸! 전체 380쪽 중 '햄릿'을 다룬 장이 시작되는 161쪽을 보기 위해 책을 힘껏 눌러 펼치는 순간, 책이 쩍 갈라지면서 여러 장이 낱낱으로 떨어져 버리는 게 아닌가. 낱장 종이를 강력 접착제로 붙였는데 풀칠이 잘못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책에서 같은 문제를 발견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알아본 바는 이렇다. 우리나라 출판사들이 대부분 영세해서 책의 기획과 편집 외에 제작 공정을 관리하는 제작부를 둔 데가 별로 없다, 책의 몸을 이루는 종이·인쇄·제본 상태를 직접 챙기지 못하고 원고를 넘겨 납품 받는 데 그치다 보니 가끔 인쇄가 고르지 않거나 제본 불량 책이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불황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일감을 얻기 위해 싼 값에 책을 만들어주겠다며 덤핑에 나서는 업체가 나타나고 있고, 작은 출판사들은 제작비를 줄일 수 있는 그런 유혹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책이 잘 안 팔리기도 하지만, 그나마 나오는 책도 제작이 부실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책은 낱장 종이를 실로 묶은 다음 책등에 헝겊을 대고 풀칠을 해서 단단하게 붙이는 양장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는 풀칠 반양장이 널리 퍼졌다. 최근 2∼3년은 양장의 전통이 되살아 나는 추세다. 반양장은 아무래도 양장보다 덜 튼튼하기 때문에, 오래 보관하려면 양장이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다들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고 책을 튼튼히 만드는 것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때일수록 정성껏 잘 만든 책이라야 독자의 사랑을 받지 않겠는가.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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