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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대밭에서 초여름을 씹다·꿈을 끼운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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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대밭에서 초여름을 씹다·꿈을 끼운 샌드위치

입력
2003.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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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면 지음 삼우반 발행·각 1만원서울 정도면 베이징(北京)이나 상하이(上海) 못지 않게 외식 문화가 발달한 도시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자고 나면 늘어나는 게 아파트와 상가이고, 상가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건 두말할 것 없이 식당이다. 실용 문화가 발달하면 관련 책의 출판도 늘게 마련이다. 요리책의 출판이 진작 중요한 실용서로서 자리 잡은 것은 '먹는 장사는 망하지 않는다'는 업종 인식과 '먹는 게 남는 것'이라는 외식·보양 문화가 화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요리책이나 맛집을 소개한 책은 많지만 요리에 대한 비평, 음식에 대한 멋들어진 감상을 다룬 글이 적다는 점이다. 월간 여성지 등에서 음식 에세이를 드문드문 보지만 책으로 묶여 널리 읽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뉴욕타임스 북리뷰에 음식 관련 책의 서평이 가끔 등장하는 것을 보면 외국은 우리와 사정이 다른 듯하다.

20년 전 이미 '백미백상(百味百想)'이란 제목으로 나와 절판됐다가 이름을 바꿔 두 권으로 재출간된 이 책이 반가운 것도 그 때문이다. 30대에 한국일보와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두루 거치고 당대의 칼럼니스트로 필명을 날린 언론인 홍승면(사진)의 음식 감상은 종횡무진이다. 질박한 묵의 맛을 칭찬하다가 돌연 고급 중국 음식인 제비집 요리의 담백한 맛을 찬양한다. 해물 잡탕 이야기를 마치면 바로 프랑스 마르세이유의 이름난 해물요리 부이야베스(Bouillabaise)에 대한 감상으로 넘어가는 식이다.

단순히 음식에 대한 개인적 감상만을 쏟아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음식과 그 맛의 기원을 '동국여지승람' '열양세시기', 정약전의 '자산어보',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 정문기의 '어류박물지' 등에서 따져보는 박학과 다식에 놀라게 된다. 예를 들어 여름에 즐겨 먹는 '화채'는 지금은 오미자를 우려낸 물을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동국세시기'를 보면 그렇지 않다. '배와 유자를 잘게 썰어 석류와 잣과 함께 꿀물에 탄 것을 화채라고 일컬으며, 음력 9월9일(중양절)에 주로 먹는 시절 음식으로 제사에도 올린다'.

그의 음식에 대한 이해는 유학이나 여행 등의 해외 경험 덕에 중국과 일본은 물론 인도와 동남아, 서양 음식에까지 두루 깊다. 하지만 글의 무게 중심은 우리 겨레의 먹거리에 대한 향수, 거칠고 소박하지만 보살핌과 정이 담뿍 든 음식 차리기와 먹기에 있다. 논 옆에서 차려내는 모내기 밥상을 설명하는 대목도 그 중 하나다.

모내기 철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노동력을 투입해야 하는 모내기를 감당하기 위해 대개 농촌 남자들은 날마다 모를 심었다. 고된 나날이다. 그 가운데 낙이 모내기 잔치라고 한다. '모내기 차례가 돌아온 집에서 모내기 일꾼들에게 잔치를 베푼다. 날마다 모내기니까 날마다 모내기 현장에서 잔치가 벌어진다.'

그러니까 모내기 때는 남자들만 고된 것이 아니다. 잔치 장만하느라 여자들은 또 얼마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겠는가. '일꾼들에게 차려내는 음식은 푸짐해야 한다. 음식이 빈약하면 일꾼들이 흉을 본다.' 일꾼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칭찬을 더 많이 들으려고 집집마다 은근히 경쟁하는 풍경에까지 이르면 '모밥'이라는 모내기 잔칫밥에 약간의 과시가 섞인 인정이 얼마나 구수하게 담겨 있는지 실감 난다.

2권 제목 '꿈을 끼운 샌드위치'는 빅토리오 데 시카와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주연한 영화에서 따왔다. 영화 '빵과 사랑과 꿈'에서 산골 경찰 지서장이 길을 지나다가 쭈그려 앉아 빵을 먹는 가난한 늙은 날품팔이꾼을 발견한다. "뭐라도 끼워서 먹고 있나요?" 노인은 빵을 두 조각으로 벌려 보여준다.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다. "그럼요, 서장님. 꿈이랍니다." 이쯤 되면 보잘 것 없는 샌드위치 한 조각을 가지고 맛보다 한결 수준 높은 멋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글이 음식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인 데다 여성지 칼럼으로 쓴 것이어서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한가한 소리라고 여길 수도 있다. 아무래도 음식 감상이 많기 때문에 1만원이나 주고 일부러 책을 찾아 읽는 건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 유행하는 짤막한 음식 이야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철에 맞게 맛나게 먹던 우리네 음식 문화의 면모를 십분 느낄 수 있는 이런 책은 쉽게 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칼럼을 묶은 이런 책들이 적지 않고, 대부분 그리 챙겨 읽을만한 것이 못 되는 데 비하면 책 장을 넘길수록 구미를 당기는 매력이 두드러진 책이다. 여름 아니면 언제 또 그런 여유를 부려보겠는가.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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