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희 지음 민음사 발행·1만5,000원바그너의 음악이 이스라엘에서 최초로 연주된 것은 겨우 2년 전인 2001년 7월7일이었다. 유대계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이 베를린 국립오페라단을 데리고 '트란스탄과 이졸데'를 연주했다. 예고 없이 행한 연주에서 바렌보임은 "마음의 상처를 받는 청중은 떠나도 좋다"고 했고 실제로 많은 청중이 자리를 떴다.
왜 바그너의 음악은 이스라엘에서 이처럼 회피됐을까? 바그너의 음악을 '독일 혼의 정수'라며 좋아한 히틀러에 대한 반감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유대인들은 바그너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히틀러를 연상하며 몸서리를 쳤던 것이다.
민음사가 선정한 2003년 '올해의 논픽션상' 역사와 문화 부문 수상작인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는 독문학자인 안인희씨가 독일 신화와 바그너, 히틀러의 연속성을 알기 쉽게 정리한 책이다.
신화가 바그너에 의해 예술로 바뀌고, 히틀러가 다시 그것을 현실에 적용한 과정을 예리하게 추적했다. 게르만 신화와 영웅 전설은 신들의 거대한 세계와 그 종말을 그리고 있는데 바그너는 이런 신화를 바탕으로 '반지' 시리즈를 작곡했고, 히틀러는 현실에서의 '거대한 붕괴'(라그나뢰크)로 세계의 종말 신화를 재현했다.
책은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 게르만 신화와 영웅전설에서는 성배와 니벨룽의 반지, 기사 이야기 등 유럽 설화의 기본 흐름을 소개한다. 중세의 사랑 이야기와 도이치 문학 이야기가 곁들여지면서 바그너의 오페라인 '로엔그린' '트리스탄과 이졸데' '탄호이저' 등과의 연관성이 거론된다. 지은이는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도이치 문화권과 1871년 통일 후의 독일을 각각 도이치와 독일로 구분해서 쓰고 있다.
2장에서는 신화의 원형과 이야기 구조가 소개된다. 3장에서는 바그너 음악을 탄생시킨 낭만주의의 배경과 음악적 분석, 4장에서는 히틀러를 등장시킨 역사적 배경과 세계관을 다룬다. 니체의 말처럼 독일은 필연적으로 히틀러를 낳을 수밖에 없었던 정신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이 거대한 무대 효과를 통해 게르만주의라는 최면을 건다고 분석했다. 저자는 이를 히틀러에게 적용, 권력은 거대한 최면과 세뇌라고 말한다.
또 바그너의 음악이 국민을 집단적 열광으로 이끄는 데 이용된 이야기를 통해 예술은 놀이에 불과한 것인 만큼 예술에 대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독일 신화와 바그너, 히틀러의 관계나 바그너가 반유대주의를 표방했다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알려졌지만 이를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점에서 솜씨가 돋보인다. 바그너의 음악과 반유대주의에 대해 가치판단을 내리고 싶은 독자라면 다니엘 바렌보임과 에드워드 W. 사이드가 바그너의 음악을 주제로 대담한 '평행과 역설'(생각의 나무 발행)을 함께 읽어도 좋을 것이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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