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화나, 딸기, 그리고 포르노그래피를 이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에릭 슐로서의 신간 '마리화나 광증: 섹스, 마약, 값싼 노동력을 통해 본 미국의 지하경제'(Reefer Madness: Sex, Drugs, Cheap Labor in the American Black Market)를 보면 이들은 모두 소비자의 욕구를 반영하는 구매의 대상이라는 것 이외에 상당히 어두운 생산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저널리즘의 고전이 된 '패스트푸드의 나라'(Fast Food Nation)의 저자이기도 한 슐로서는, 세 편의 보고서로 이루어진 신간에서 미국의 지하경제를 비판적으로 진단한다.첫 번째 보고서에서는 마리화나를 거래하다가 종신형을 받은 한 서민의 기막힌 이야기를 통해 미국 마리화나 암시장과 정부의 기만적 정책에 대해 살펴본다. 미국에서 마리화나는 지극히 모순적 성격을 지닌다. 12세 이상 미국인의 3분의 1이 한 번 이상 피워본 경험이 있을 정도로 널리 퍼졌지만 이를 소지하거나 거래하면 때로 살인보다 많은 형량의 중벌이 내려진다. 그런데 처벌되는 것은 대부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로 이들은 죄의 경중보다는 법과 타협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처벌 받는다. 마약에 대해 강경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정부가 이용하기 좋은 대상인 것이다. 저자는 다른 선진국들처럼 마리화나를 의약품으로 허용하는 추세에 따를 것을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캘리포니아 농촌에서 일어나는 불법 이민 노동자 고용실태를 파헤친다. 수확과정이 힘들어서 '악마의 과일'로 불리는 딸기는 주로 멕시코 출신 노동자들의 손으로 수확된다. 하루 10∼12시간 일하고 비좁은 바닥에서 새우잠을 자는 이들 노동자의 평균수명은 49세. 이들을 이용하는 방법 또한 체계적이고 교묘하다. 멕시코인을 명목상의 농장주인으로 만든 다음 이들로 하여금 불법고용을 하게 하고, 빚을 주어 이자를 받고, 또한 헐값에 수확물을 사들이는 이중, 삼중의 덫을 씌우고 있다고 저자는 고발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루벤 스터만이라는 미국 포르노그래피 시장의 창시자격인 인물을 중심으로 그 역사를 살피고 있다. 포르노그래피가 불법일 때 사업을 시작한 스터만은 평생 감옥을 들락거리다가 결국 감옥에서 죽어가야 했지만 오늘날 대기업들은 스터만이 가르쳐준 포르노 사업의 노하우로 공식적으로 떼돈을 벌고 있다.
엔론 사태로 드러났듯 미국 경제는 탈세, 돈세탁 등으로 얼룩진 지하경제를 닮아가고 있다. 값싼 불법 노동력을 고용하는 기업이 경쟁력을 갖고, 빈부 격차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자유, 정의 등 대의를 부르짖기 좋아하는 미국의 한 쪽에서는 힘이 없어서 자유와 정의를 박탈당하는 이들이 있다. 이 책은 그러고 보면 갈수록 골이 깊어지는 미국사회의 위선에 관한 책이다.
박 상 미 재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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