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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로맨스의 화가 김흥수 <20> 문자추상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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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로맨스의 화가 김흥수 <20> 문자추상 논쟁

입력
2003.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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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1904∼1989) 선생의 이야기가 나온 김에 문자추상 모방 논쟁에 얽힌 뒷얘기를 해야겠다. 문자추상은 문자 자체의 조형미를 살려 추상화로 표현하는 독특한 화풍으로 1960·70년대 세계화단에서 크게 눈길을 끌었다. 처음에는 중국의 자우키, 일본의 스가이 등이 문자를 가지고 화면을 구성하는 데서 출발했다. 그런데 창조성이 풍부한 이응노 선생은 그것을 창조적 추상으로 구성해 작품을 만들었다. 1973년 한 일간지를 통해 이응노 선생과 N씨 사이에 작품 모방 여부를 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은 1960년 파리에서 열린 한 전시회가 발단이었다. 나는 두 사람과 함께 파리에서 생활하며 작품활동을 지켜봤기 때문에 그 내막을 좀 알고 있다. 논쟁의 불씨가 됐던 전시회의 개최 경위와 그때의 일화를 소개하겠다.1959년 내가 파리에서 자리를 잡아 갈 즈음 주불 대사로 정일권씨가 부임했다. 그는 함경북도 경원 출신으로 국군 창설에 참여하고 한국전쟁 때 3군 사령관을 지냈고 그 후 육군참모총장과 합동참모본부장을 거친 실세였다. 나는 그를 만난 자리에서 파리에는 좋은 한국 화가들이 꽤 있으니 그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재불 한국인 전을 주최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 대사도 흔쾌히 수락하고 나에게 전시 주관을 맡겼다. 나는 일정을 이듬해 3월로 잡았고, 장소는 볼니가 7번지에 있는 세르크르 보르네라는 클럽으로 정했다. 전시의 제목은 '재불 한인화가 9인 종합전'으로 붙였다. 당시 파리에는 이응노 선생과 N씨, 권옥연 이세득 이성자씨 등이 와 있었고 그들이 전시회의 주축이 됐다. 나는 한국 작가들의 수준과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나름대로 독창적인 전시를 꾸미기 위해 디스플레이에 전력을 기울였다.

전시가 임박해 작품을 반입하는 날이었다. 그날 N씨는 조금 늦게 작품을 가져 왔는데 N씨가 작품을 풀어 놓은 것을 보고 이응노 선생이 헐레벌떡 내게로 달려와 무척 상심한 얼굴로 "큰 일 났다"고 말했다. 이 선생은 이 전시에 출품하기 위해 100호짜리 그림을 여러 장 그려 놓았는데 N씨가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에게 "이번 전시는 시시하니 나는 소품이나 낸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이 선생은 그 말을 곧이 듣고 전시회 출품작으로 소품만 몇 장 들고 와 보니 N씨는 자신의 작품과 비슷한 형태의 작품을 100호도 넘는 크기로 그려서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울화통이 터진다고 하소연했다.

그 말을 들은 나도 어이가 없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전시는 이렇게 그냥 끝났고 두 사람은 문자추상 작품을 그 후에도 계속 발표했다. 당시 파리 화단은 기존의 서양화 기법에서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고, 상대적으로 동양화에 눈을 돌리고 있던 때였다. 그 때 일본 작가들이 동양화를 서양화의 마티에르 기법(재질감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표현, 관심을 끌었다. 종이에 일본화 물감을 쓰면서 액자는 서양화식으로 한다든가, 종이에 그린 그림을 캔버스에 붙이는 방식이었다. 동양화를 전공한 이 선생도 그러한 방식으로 새로운 작품을 시도했는데 마침 그때 N씨도 그러한 경향의 작품을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1973년에 파리에서 이 선생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지 국내 모 일간지에 '창작과 모방'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기고해 N씨를 신랄히 비판했고, 서울에 있던 N씨도 이에 대해 '작가와 교양'이라는 제목으로 이를 반박했다. 미국에 있던 나는 그냥 두고만 보는 것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 같은 신문에 '작가와 양심'이라는 제목으로 내가 본대로 써서 기고하였다. 내가 쓴 글을 보고 N씨는 '추한 한국인(Ugly Korean)'이라는 내용의 글을 써서 발표하였고 내가 다시 반박의 글을 썼더니 신문사에서 사회 여론이 나쁘니 그만 중단해 달라고 요청해 파리, 서울, 필라델피아를 이은 3각 논쟁은 중단됐다. 나는 누구 편을 들려고 하지도 않았고 지금도 그러고 싶지 않다. 다만 예술가의 대결은 창작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고, 우수한 창작은 작가 양심의 소산이라는 점을 강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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