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의 휴전 선언 이후 청신호가 켜졌던 단계적 중동평화 이행안이 이스라엘의 보안장벽 설치 강행을 둘러싸고 어려움에 처했다.최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지도자가 잇따라 미국을 방문,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중동평화안 이행을 협의한 자리에서 이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됐다. 무장단체 휴전, 팔레스타인인 수감자 석방 계획 발표, 자치지역 내 이스라엘 정착촌 철거 등 양측이 내놓은 일련의 화해 조치로 무르익어 가던 평화 분위기가 새로운 장벽에 부딪힌 것이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주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좋은 벽은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을 둘러싸는 600㎞ 길이의 장벽 설치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의 공격을 막고 요르단강 서안 내 유대인 정착민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일 뿐이며 팔레스타인에 미칠 부작용은 최소화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팔레스타인은 보안장벽 건설이 향후 팔레스타인 독립국의 영토가 될 지역을 점령하려는 이스라엘의 검은 야욕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구간에서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내로 보안장벽이 상당히 들어와 있어 팔레스타인측의 분노를 사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유로운 통행을 가로막아 팔레스타인을 봉쇄한다는 비난도 거세다. 이에 따라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총리는 25일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보안장벽 건설을 강력히 비난하고 부시 대통령에게 이스라엘측에 압력을 가해줄 것을 촉구했다.
중동평화안이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자 이를 주도하던 부시 대통령은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다. 부시 대통령은 압바스 총리와의 회담에서는 보안장벽 문제에 대해 팔레스타인 입장을 두둔하고 이스라엘측에 이의 중단을 촉구했음에도 막상 샤론 총리와 만나서는 다시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부시 대통령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보안장벽은 부적절한 것이 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샤론 총리에게 중단하라고 압력을 가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보안장벽 문제는 3단계로 구성된 단계적 중동평화 이행안에는 명시적으로 거론되지 않아 현재로서는 뚜렷한 중재 방안이 없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6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자살폭탄 테러가 기승을 부리자 이들의 거점으로 지목되고 있는 예닌 등 주요 도시를 이스라엘로부터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450㎞ 길이의 거대한 장벽 건설에 착수했다. 이후 600㎞로 전체 길이가 연장됐으며 31일 147㎞에 이르는 1단계 공사가 마무리됐다. 폭 40m의 장벽 양편에는 철조망이, 중앙에는 철제 장벽 또는 콘크리트 장벽이 세워지며, 곳곳에 감시 카메라도 설치된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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