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힘들어, 혹은 찰나적 충동을 못 이겨 부모와 자식간의 천륜을 어긴 범죄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세상이다. 이럴 때 효도의 의미를 되새기는 근교 여행을 해보는 건 어떨까. 경기 수원과 화성일대에 가면 조선시대 역대 임금 중 가장 효심이 뛰어난 정조(1752∼1800)의 숨결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자녀의 손을 잡고 효행여행을 떠나보자. 화성, 행궁, 융·건릉, 용주사, 지지대비 등을 보면서 자녀들이 효도의 참 뜻을 깨달았다면, 수원갈비를 비롯한 먹거리는 부모들이 줄 수 있는 선물이다.우선 조선시대 역사를 복습하자. 조선 22대 정조는 영조의 손자로 혜경궁 홍씨의 아들이다. 할아버지(영조)의 손에 의해 뒤주에 갇힌 채 생죽음을 당하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때, 정조의 나이는 불과 열살. 어릴 적 비극적인 참사를 목격한 터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특히 남편과의 생이별을 감내해야 했던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다.
첫 목적지는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에 위치한 융·건릉(사적 206호). 경부고속도로에서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동수원IC로 나와 43번 국도를 따라 화성방향으로 간다. 1번 국도를 타고 병점에서 우회전하거나 과천-봉담 고속화도로를 이용, 호매실IC에서 빠져도 된다. 1시간 정도 걸린다. 기차로 오면 경부선 수원역에서 24, 24-1,46, 46-1번을 타면 40분, 병점역에서 34번, 50번으로 10분 소요된다.
융릉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묘. 당시 양주 배봉산(현 서울시립대 뒷산)에 묻혀 있던 사도세자의 묘를 정조13년(1789년) 이 곳으로 옮기고 왕릉에 준하는 규모를 갖췄다.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버지의 한을 풀어주기 위함이었다. 융릉옆에 위치한 건릉은 정조와 왕비(효의왕후)의 합장묘이다. 죽은 후 아버지를 옆에서 모시고 싶다는 정조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융릉에서 건릉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소나무와 갈참나무가 상당히 운치있다. 19∼24세 300원, 25∼64세 500원. 관리사무소 (031)222-0142.
융·건릉에서 1.7㎞ 떨어진 용주사는 정조가 아버지의 넋을 달래기 위한 원찰(願刹)로 삼은 곳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돼 병자호란때 소실된 것을 정조의 명에 따라 다시 지었다. 상량문, 부모은중경 등에 새겨진 글에서 정조의 효심을 엿볼 수 있다. 범종(국보 120호)은 상원사 동종, 경주박물관의 에밀레종과 함께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정조가 직접 심은 회양나무(천연기념물 264호)와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대웅전 후불탱화, 병풍 등 볼거리도 많다. 성인 1,000원, 중고생 800원 어린이 500원. 관리사무소 (031)234-0040.
화성에서 수원으로 넘어와 수원갈비를 먹어보자. 수원갈비는 1940년대 수원 영동시장 싸전거리에서 갈비에 양념을 무쳐서 숯불에 구워낸 것이 효시. 참기름, 마늘, 파, 볶은 통깨, 후추가루, 설탕, 소금, 배 등이 양념으로 사용되며 담백한 맛이 특징. 주로 수입고기를 사용한다. 삼부자갈비(031-211-8959), 본수원갈비(211-8434), 연포갈비(255-1337), 월드컵갈비(257-9292) 등이 유명하다. 1인분(400g가량) 기준 2만∼2만5,000원선. 2인분만 시켜도 어른 3명이 충분히 먹을 수 있다.
점심식사와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 본격적으로 화성관광에 나선다.
화성은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하고 5년이 지난 1794년 1월에 시작, 2년6개월 만에 완공됐다. 우리나라 성곽문화의 백미로 손꼽힌다. 사도세자의 묘를 옮기면서 이 일대에 흩어져 있는 민가와 관청을 팔달산 아래로 이전시키고 화성과 행궁을 축성했다. 실학사상의 대가 정약용이 설계와 제작을 맡았다. 창룡문, 화서문, 팔달문, 장안문 등 4대문을 비롯, 현재 남아있는 41개 시설물은 실용성과 합리성을 모두 갖췄을 뿐 아니라 외관미도 뛰어나다. 1997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화성과 같이 건축된 행궁은 정조가 이 곳으로 행차할 때 묵었던 별궁. 일제시대때 대부분이 손실됐으나 수원시가 1996년부터 복원에 나서 576칸중 482칸을 최근 재현했다.
정조의 침소인 복내당보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숙소인 장락당이 화려하게 지어진 현장을 보면서 정조의 효심을 가늠해보자. 10월 정식개관까지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행궁관리사무소 (031)228-4405.
수원시에서 운영하는 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하면 보다 쉽게 성곽과 행궁을 둘러볼 수 있다. 출발은 오후 2시 수원역에서 시작한다. 첫 코스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서장대. 2층 누각으로 축조된 군사지휘소로 수원시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화서문(보물 403호), 행궁, 화홍문을 따라 동북공심돈, 방화수류정, 봉돈 등을 차례로 구경하고 연무대에 내려 전통 레포츠인 국궁을 직접 쏘아볼 수 있다. 한바퀴 도는 데 2시간30분가량 걸린다. 오전 10시30분에도 같은 코스로 진행된다. 추석과 설을 빼고는 연중무휴로 운행된다. 성인 5,000원, 중고생 3,000원, 어린이 2,000원. (031)224-2000.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1번 국도변에 위치한 고개에 있는 비석. 효행여행의 마지막 코스다. 융릉이 멀리 내려다 보여 정조가 이 곳에만 오면 발길이 더디다고 역정을 냈다고 전해진다. 참배후 돌아가는 길에는 뒤돌아보기를 자주 해 행렬이 더뎌졌다고 한다. 더딜 지(遲)자가 두개나 들어간 이유를 이해할 만 하다. 정조의 아들인 순조임금이 아버지의 갸륵한 효심을 기리기 위해 이 곳에 비를 세웠다. 정조임금 동상과 효행기념관를 구경하면서 하루 여행을 마무리하자.
/수원·화성=한창만기자 cmhan@hk.co.kr
수원 화성 따라 신나는 열차여행!
영국 버킹검궁전, 서울 덕수궁과 창덕궁에서나 볼 수 있는 수문장 교대식을 화성 행궁에서도 볼 수 있다. 10월말까지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에 열린다. 행궁을 지키는 수문장과 병사, 취타대 등 53명이 참가한다. 전통복장을 입은 정조임금과 혜경궁 홍씨가 숙소에서 나와 행궁 정문에 마련된 용상에 좌정하면서 의식은 시작된다. 초엄(궁중문 열쇠 보관함 인수 인계) 중엄(새 수문장에게 패를 인수인계) 삼엄(군례후 임무교대) 순으로 진행된다. 전통 타악기 페스티벌, 정조시대 24반 무예전, 전통탈춤, 태껸시범 등을 덤으로 볼 수 있다.
행사가 끝나고 관광객이 직접 참가할 수 있는 행사도 다양하다. 인터넷홈페이지(www.sumunjang.co.kr)에 신청하면 교대의식에 사용되는 북을 치거나 수문장으로 직접 출연할 수도 있다.
수원 화성을 따라 기차를 타고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월요일 제외) 팔달산 강감찬 장군 동상앞에 가면 화성열차를 탈 수 있다. 열차라고 해서 기차역에서 볼 수 있는 거창한 규모는 아니다. 3량으로 구성된 54인승 꼬마열차다. 열차 앞은 정조임금을 상징하는 용머리형상을 하고 있다. 객차는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가마형태로 돼있다. 팔달산을 출발, 화서문-장안공원-장안문-화홍문-연무대까지 3.2㎞구간. 30분∼1시간20분 간격으로 하루 10차례 운행된다. 편도 30분 정도 걸린다. 이용료는 성인 1,100원, 청소년 800원, 어린이 500원이다. 팔달산(031-228-4683), 장안공원(228-4685), 화홍문(228-4684), 연무대(228-4686) 등 4군데에 매표소가 마련돼있다. 토·일요일과 공휴일에는 이용객이 많아 화홍문과 장안공원 매표소가 폐쇄된다.
/한창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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