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할머니가 한국전쟁 때부터 50년간 키워 온 양아들이 부양을 소홀히 해 생활고를 겪자 "친자가 없도록 호적을 정리해야 정부 생활보조금이라도 탈 수 있다"며 소송을 통해 모자 관계를 정리,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권모(81)씨가 혼혈아를 발견한 것은 1953년 4월. 백인 미군과 한국인 여성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보였던 이 아이는 포대기에 싸인 채 권씨의 남편이 이발사로 근무하고 있던 미군 부대 근처에 버려져 있었다. 나물을 캐러 나선 길에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한 권씨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도 전쟁이 발발한 50년 친아들을 친척집에 맡겨 놓은 채 남편과 함께 월남한 상태였고, 3년간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 권씨는 아이를 소중히 품에 안고 돌아와 친아들 대신 정성스레 키웠고, 권씨 부부는 6년 후인 59년 7월에는 아이를 호적에 친생자로 입적, 어렵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77년 남편이 숨진 이후 아들은 점차 키워 준 어머니에게 소홀하기 시작했다. 남편 사망 직후 호주까지 승계했으면서도 노년에 접어든 어머니의 허전함은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일에만 몰두했다. 더욱이 양아들은 지난해 7월 선교활동을 이유로 미국으로 출국, 사실상 권씨에 대한 부양의무를 포기했고 혼자 남은 권씨는 극심한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권씨는 그러나 호적상 친자가 있다는 이유로 생활보호대상자에서도 제외되자 결국 정부의 생활보조금이라도 받기 위해 양아들과의 친자관계를 정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서울지법 가사5단독 양범석 판사는 30일 권씨가 양아들(51)을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 청구소송에서 승소 판결, 아들을 잃는 대신 정부보조금이라도 얻으려 한 권씨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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