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와 북한의 상관관계가 다시 흥미롭다. 핵문제를 논의할 다자회담 일정이 지연되면서 생기는 흥미이다. 지연 이유가 북한의 불확실한 태도 때문이라면 미국이 이라크에서 치르는 곤경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이다. 전쟁에서 이기고 이라크를 점령 중이지만 미국의 전후 이라크관리가 혼미 속에 빠져 있어 북한의 결정과 판단에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 것인지, 그래서 북한이 다시 여유를 부리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다.■ 가령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의 견해가 이런 관점에서 관심을 끈다. 방한 중 그는 며칠 전 방송인터뷰에서 "미국의 주요 전력이 바그다드를 비롯한 중동에 주둔하고 있고, 미군이 매일 죽어가는 현실에서 몇 달 안에 북한을 선제공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그다드의 상황이 악화할수록 한반도에서의 전쟁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질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미국이 이라크전을 감행, 속전으로 승리했던 석 달 전만 해도 북한이 바싹 겁을 먹었던 흔적이 여러 군데서 나타났었다. 그에 비추어 보면 이는 대조적인 상황이다. 그런 이유로 미국의 대북 직접 압박이 느슨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실제로 이라크에서 미군은 고전 중이다. 지난주 말 만해도 5명, 전쟁이 끝난 5월부터 지금까지 이라크에서 모두 49명의 병사가 죽었다. 후세인 잔당들의 명백한 군사공격에 의한 손실이다. 이런 공격은 바그다드 뿐 아니라 이라크 전역에 걸쳐 나타나고 있고, 병사들의 사기도 떨어져 있다고 한다. 현지 사령관은 현 상태를 전면적인 게릴라전이라고 규정했다. 이보다 더 비관적인 분석도 나왔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최근 보고서는 '미국이 이라크 국민을 상대로 제3차 걸프전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정권을 붕괴시켰지만 미국의 승리는 이라크 국민으로부터 배척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런 종류의 비대칭전도 제압할 수 있을 것인지는 불투명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전후 국가재건 계획의 졸속과 차질 때문으로도 미국은 새로운 비난에 직면해 있다.
■ 이라크전을 보며 북한이 가장 무서워했던 것은 지도자 살해를 직접 노린 새로운 공격형태의 등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7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정전 50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가 취소된 것을 이런 두려움과 연관짓는 보도도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미국의 암살기도를 우려한다는 것이다. 그런 북한이 이라크에서 고전하는 미국을 보고 한숨을 돌리고 있을까. 설사 그렇다 해도 그런 정세까지 계산해도 될만큼 북핵문제가 시간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조재용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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