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7월31일 베트남 구엔(阮) 왕조의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保大: 재위 1926∼1945)가 파리의 한 병원에서 삶을 마쳤다. 84세였다. 대부분의 '마지막 황제'들이 그렇듯, 바오다이도 유능하고 강건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유능하고 강건했다고 하더라도, 죽을 때까지 황제로 남아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바오다이가 살았던 시대는 더 이상 황제를 요구하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물려받은 베트남은 온전한 독립국도 아니었다.바오다이가 아버지 카이 딘 황제로부터 제위를 물려받은 것은 13세 때다. 그러나 1858년 이래 베트남을 거듭 침공해 보호국으로 삼은 프랑스가 1887년 라오스·크메르와 함께 베트남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으로 통합해버린 터라, 바오다이는 아버지가 그랬듯 이름 뿐인 황제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프랑스는 베트남 식민지를 셋으로 나누어 북부 하노이 중심의 통킹을 반(半)보호령으로, 남부 사이공(지금의 호치민시) 중심의 코친차이나를 직할령으로, 중부 후에를 중심으로 하는 안남을 보호령으로 삼고 있었다. 프랑스는 안남의 후에를 수도로 삼은 구엔 왕조의 황권을 형식적으로는 인정했지만, 실제의 시정권(施政權)은 파리에서 파견된 총독에게 있었다.
1945년 3월 베트남을 침공해 프랑스 세력을 몰아낸 일본군은 바오다이로 하여금 베트남 독립을 선언하도록 하고 그의 제위를 확인해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허울 뿐이었던 이 제위마저 베트민(越盟)이 중심이 된 그 해 8월 혁명으로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졌다. 종전 뒤 바오다이는 다시 베트남에서 패권의 발톱을 드러내던 프랑스의 위세를 업고 남베트남의 원수(元首)가 되었지만, 1955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총리 고딘디엠(吳廷琰)이 국민투표를 통해 왕정을 폐지하자 프랑스로 망명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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