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길에서 띄우는 편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3.07.30 00:00
0 0

강진은 소(牛)가 누운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의 곳곳을 소와 연관 지어 이름을 지었습니다. 마을 뒤의 우두봉은 소의 머리를 뜻하고, 관아(지금의 군청)에 있는 쌍샘은 소의 콧구멍입니다. 우이봉은 소의 귀, 보은산 끝자락은 소의 혀끝이라는 뜻으로 씻끝이라고 부릅니다.마을의 원로들은 이렇듯 소와 연관된 땅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한 예로 소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강진의 주요 건물이 들어서 있습니다. 씻끝에는 강진의 미래를 진 강진고등학교를 비롯해 도립병원, 농촌지도소 등이 있고, 소의 콧등이 있는 위치에는 군청과 경찰서가 있습니다.

강진도 몇 년 사이에 많이 바뀌었습니다. 길을 넓히고 집을 새로 단장했습니다. 젊은층은 편리해진 강진이 반갑겠지만 원로들은 그것이 아닙니다.

소의 정수리에 해당하는 우두봉에 자연보호를 명분으로 철탑을 박았고, 도로확장을 한다며 가장 중요한 부위에 해당되는 씻끝의 끝을 잘라버렸다고 합니다. 영랑생가에서 버스터미널에 이르는 길(영랑로)을 일직선으로 뚫어 강진읍을 반으로 갈라놓았다고 합니다. 소의 정수리에 철탑을 꽂았으니 도끼로 머리를 친 격이며, 혀를 잘랐으니 할 말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먹을 것이 있어도 먹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운과 재물이 들어와 쌓이는 영랑생가의 기운이 영랑로를 통해 다 빠져 나간다고 합니다.

강진만 한가운데 있는 섬 가우도 양쪽을 막아 간척지를 만드는 작업과 아름다운 바위산인 만덕산 옥녀봉을 마구 헐어내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이 많습니다. 간척 사업이 완료되면 강진읍 코앞까지 밀려왔던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소가 물을 마실 수 없으니 미래의 운명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옥녀봉은 천상의 옥녀가 옷감을 짜서 강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봉우리입니다. 부의 상징입니다. 옷감을 짜는 베틀 부위를 헐어내고 있으니 앞으로 강진 사람들은 헐벗고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일까요. 거대한 채석장이 들어서 있는 덕룡산 기슭을 바라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세상에는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이더라도 믿고 따라야 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자고로 땅기운을 크게 망가뜨린 이들은 스스로도 망가집니다. 덕유산의 울창한 산을 밀어내고 만든 무주리조트, 발왕산의 정기를 토막내 조성한 용평스키장. 모두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권오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