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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65>윌리엄 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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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65>윌리엄 펜

입력
2003.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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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년 7월30일 펜실베이니아의 개척자 윌리엄 펜이 런던 근교의 필드에서 74세로 작고했다. 오늘의 주인공 윌리엄 펜의 아버지는 자기 이름을 그대로 아들에게 물려준 영국 해군제독 윌리엄 펜이다. 아버지 펜은 자메이카를 정복한 당대의 유명한 군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에게 훨씬 더 유명한 윌리엄 펜은 식민지 개척자이자 종교운동가였던 아들 펜이다.윌리엄 펜의 식민지 개척은 그의 종교적 신념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청교도 신앙 때문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퇴학을 당하기도 한 펜은 23세 때인 1667년 퀘이커교도가 된 뒤 새로운 믿음을 전파하는 팸플릿들을 집필한 죄로 네 차례나 투옥되었다. 1647년 영국인 조지 폭스가 창시한 퀘이커교는 번잡한 교리나 교회 제도를 벗어 던지고 '내면으로부터의 빛'에 기대어 구원을 꾀하는 종파다. '프렌드협회'라고도 부르는 이 종파는 주류 기독교에 견주어 두드러지게 평화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이다.

아버지 윌리엄 펜이 죽은 뒤, 찰스2세는 자신이 제독에게 진 빚의 대가로 아메리카의 델라웨어강 서안 지역을 아들 펜에게 주었다. 펜은 그 곳에다 신앙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는 새 식민지를 건설했다.

영국과 독일에서 박해를 받고 있던 퀘이커교도들도 잇따라 대서양을 건너 델라웨어강 부근에 정착했다. 그들은 그 곳에서 자신들의 믿음에 따라 원주민과 우호를 다지며 한 시절 평화를 구가했다. 그들은 노예제도를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에 반대한다는 자신들의 양심에 따라 징집을 거부했다. 펜은 아버지를 기려 이 새로운 식민지를 펜실베이니아(라틴어로 '펜의 숲속 나라'라는 뜻)라고 이름 붙였는데, 결국은 자신을 기린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 되었다. 펜실베이니아의 중심 도시인 필라델피아의 거리 이름 대부분은 펜이 직접 지은 것이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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