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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최고재판관에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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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최고재판관에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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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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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두 개의 최고재판소가 있다. 민사, 형사, 행정사건 등에 대하여 최종적 판결을 내리는 대법원과,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판하고 헌법을 최종적으로 유권해석하는 헌법재판소이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권위주의 체제에서와는 달리,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시민과 시민, 그리고 시민과 국가간의 분쟁이 법적인 논리 사이의 투쟁으로 전화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법률적 논투(論鬪)의 승패를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곳이 두 개의 최고재판소이다.노무현 정부 하에서 대법원은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인이 교체되며,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장을 포함해 9명 전원이 교체된다. 당장 내달에 헌법재판소 재판관 1석과 9월에 대법관 1석이 비게 된다. 최고재판소에 어떠한 사람이 들어가 있는가는 사회 분쟁해결의 향방을 가르는 데 결정적 의미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미미하다.

일상 생활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시각과 식견을 가지고 입법부와 행정부의 고위인사들에 대한 맹렬한 비판을 가하는 데 두려움이 없으며, 그들의 발언과 행태 하나하나를 평가할 수 있는 '평론가'들이다. 그런데 자신의 삶에 대하여 즉각적 규정력(規定力)을 행사하는 최고재판소의 재판관이 누구인지, 또 어떻게 임명되는지는 알지도 못한다. 유명 정치인과 장관 이름을 줄줄 외울 수 있지만,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절반이라도 이름을 아는 시민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과거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 사법부는 민주화를 위해 몸을 던진 사람들에 대하여 "악법도 법"이라며 중형을 선고했다. 그럼에도 민주화 이후 사법부는 대중적 비판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왜 그러한가. 대통령, 국회의원, 시장, 도지사 등의 경우만 하더라도 시민에게 많이 노출되어 있고 또한 선거라는 검증장치가 있지만, 사법부는 시민에게 멀리 있는 존재인데다가 검증의 장도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두 최고재판소가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하여 중요한 판결을 여럿 내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 시기 개혁과 변화를 희망하는 시민사회의 절절한 목소리를 최고재판소가 진지하게 경청하고 이를 판결에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또한 최고재판소가 사회진보를 선도하였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이러한 점은 그동안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구성원이 철저하게 법원 내부의 논리에 따라 충원되어 온 점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시민사회의 다양한 구성과 이념적 가치를 반영하는 인사원칙이 필요하다. 기존의 법원 논리에 충실한 고위 법조 엘리트만으로 최고재판소가 구성될 때 사회의 분쟁은 특정한 경향에 따라 해결될 소지가 높다. 물론 고위 법관 중에서도 개방적 자세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수용하며 소신 있는 판결을 내리는 사람이 있음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사법부의 중요한 임무가 사회·경제적 약자의 보호라는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는 이러한 '소수자'의 입장을 일관되게, 그리고 전면적으로 대변할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많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계급, 계층, 집단의 이해관계의 충돌이 법적으로 종결되는 곳이 최고재판소라고 할 때, 최고재판소의 인적 구성은 이념, 출신배경, 성별 등에서 '다양성'을 갖추어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은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또한 국가권력에 대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반영할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제 더 이상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시민적 비판과 통제에서 자유로운 고고한 성역일 수는 없다. 그리고 최고재판소의 참된 권위는 시민의 목소리를 무시함으로써가 아니라, 그 목소리의 '합리적 핵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때 반석 위에 놓일 것이다.

앞으로 수년간 차례차례 교체될 최고재판소의 구성원의 성향은 향후 10년 이상 우리 사회 발전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인자로 작용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입법부와 행정부의 고위층에 대해 갖는 관심의 절반만이라도 최고재판소의 구성원을 향하여 돌려야 하는 이유이다.

조 국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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