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과 방송에 나오는 뉴스를 보면, 카드 빚에 얽힌 자살사건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며칠 전 부산에서는 가난한 40대 부부가 아들의 카드 빚을 갚고 난 후에도 부채문제가 계속되자 절망감으로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는가 하면, 인천에서는 카드 빚에 시달리던 주부가 세 자녀와 함께 고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뿐 아니라 유괴 납치 강간 등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중에는 카드 빚 독촉에 쫓겨 자기 파멸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카드 빚을 갚아주면 아무하고라도 결혼하겠다"는 젊은 여성들까지 나타나고 있다.■ 빚의 무서운 속성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잘 드러난다. 채권자 샤일록과 채무자 안토니오는 빚을 제때에 못 갚을 경우 '엉덩이의 살'을 담보로 하는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채무자의 채권 불이행에 담보물인 엉덩살을 잘라내는 비인간성을 용인하지 않았다. 대문호는 "계약에는 살만을 규정했지 피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변론의 위트를 이용하여 채무자를 구해냈다. 그러나 오늘날 카드 빚은 샤일록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아닌가. 채무자들은 계약상 요구하지 않은 목숨마저도 내놓고 있다.
■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카드회사야말로 이러한 소비자의 심리를 가장 잘 이용하고 있다. 플라스틱 카드 한 장이면 원하는 물건을 외상으로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현금을 인출하여 쓸 수 있다. 아무리 친한 사이일지라도 서민들끼리는 돈 100만원을 선뜻 빌리거나 빌려주기가 쉽지 않다. 은행카드는 한번 발급받으면 담보 없이 한도액을 빌릴 수 있다. 그래서 정말 고율의 이자임에도 불구하고 카드 빚의 미로 속으로 빠져들고, 끝내는 헤어나오지 못한다. 카드 빚을 막기 위해 카드 빚을 얻을 정도에 이르면 파멸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 우리나라의 신용불량자가 3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대부분 카드 빚이 만들어낸 신용 불량자들이다. 카드 빚도 결국 카드를 쓴 개인이 책임질 문제이다. 그러나 한 나라 경제활동인구의 10% 정도가 신용불량자가 되었다면 이것은 보통 큰 사회문제가 아니다. 카드 빚을 진 개인뿐 아니라 그 가족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게 된다. 이런 신용불량자가 웅성대는 조직이나 사회가 명랑하고 안전할 리없다. 카드 빚은 계약에 없이 개인과 사회의 기초를 허물고 있다.
/김수종 수석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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