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볼 때만 해도 이 영화를 이 땅에서 이렇게 빨리, 더욱이 단축 버전이 아닌 178분짜리 오리지날 버전으로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수상엔 실패했지만 칸을 열광·당혹시킨 스타일 상의 파격적 실험성 탓이다. 물론 '도그빌'(사진·Dogville) 이야기다. '물랑 루즈' '디 아더스'의 니컬 키드먼과 '브레이킹 더 웨이브''어둠 속의 댄서'의 명장 라스 폰 트리에가 첫 조우에서 빚어낸 화제의 디지털 소품.서막과 9개의 장으로 짜여진 3시간 가까운 영화가 그저 몇 개의 소품과 선, 글자, 그림 등으로 이뤄진 지독히도 연극적인, 그것도 예의 리얼리즘적 연극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소위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사극의 '낯설게 하기'에 의거해 꾸며진 하나의 세트에서만 전개되니 어찌 그렇다 하지 않겠는가! 내가 주저하지 않고 영화를 '필름으로 찍은 연극'(Filmed Theater)이라고 규정하는 이유다.
눈길을 끄는 건 그러나 '튀는' 스타일만은 아니다. 덴마크 출신 감독이 하필이면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1930년대 경제 대공황기 미국 로키 산맥 근처의 가상 지역을 무대로 미국(인) 이야기를 펼치다니 그 의도가 여간 심상치 않아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제목처럼 그 공간은 완전히 '개 같은 마을'임이 드러난다. 처음엔 천사 같던 마을 주민들도 결국은 예외 없이 개 같은 인간들이고. 그래서일까,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 반전 중 하나로 간주될 법한 영화의 결말이 그다지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한편 '툼 레이더2―판도라의 상자'는 전형적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이다. 하지만 영화는 전편 만한 속편이 없다는 속설을 보란 듯이 뒤집으며 제법 볼만한 속내를 갖추는 데 성공한다. 맹목적이리만치 허무맹랑한 게임·만화적 스펙터클에 경도된 1편과 달리, 꽤 복잡한 이야기와 인물구도 등으로 극적 균형감을 획득해냈다고 할까. 라라 크로프트 캐릭터나 안젤리나 졸리의 연기 또한 안정감이나 현실적 설득력에서 향상되었다. 결국 '콘 에어'의 사이먼 웨스트보다는 '스피드''트위스터'의 얀 드봉의 연출 역량이 그나마 다소 낫다는 결론이 도출된 셈이다. 정색하고 보면 그게 그거라 할지 모르겠지만.
반면 '여우 계단―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는 '툼 레이더2'와는 반대의 길을 걸어간 안타까운 경우다. 송지효, 박한별, 조안 등 신인 연기자들의 연기 앙상블을 보는 재미는 제법 쏠쏠하지만, 첫 번째, 두 번째 이야기의 공포성을 대폭 줄이고 성장기 여고생들의 심리적 불안에 초점을 맞추려는 감독의 선택으로 인해 극적 임팩트가 약화하는 결과가 빚어진 탓이다. 다소 심심해졌다고 할까. 하기야 40대 초반 남성인 내가 10대 소녀들의 섬세한 심리를 제대로 이해할 리 만무하지만.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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