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귀신이 등장하는 고스트물의 승패는 관객을 깜짝 놀라게 만들 수 있는 귀신에 달렸다. 귀신의 모습이 됐든, 귀신의 출몰을 둘러싼 이야기가 됐든 관객에게 등골이 서늘한 무서움을 안기지 못한다면 잘 만든 공포물이라고 보기 어렵다.그런 점에서 윤재연 감독의 데뷔작인 학원 공포물 '여우계단'은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귀신의 출몰은 영화의 독창성을 떨어뜨린다. 가부키(歌舞伎) 배우처럼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한 귀신, '링'의 사다코(貞子)처럼 엉금엉금 기어서 나타나는 귀신은 일본 공포물을 연상케 한다.
더욱이 관객이 다음 장면을 앞질러 예측할 수 있는 이야기 전개는 정답을 보고 맞추는 십자말풀이처럼 긴장감이 떨어진다. 여고괴담 1편처럼 입시에 치중한 잘못된 교육제도를 꼬집는 비판의식도, 끝까지 귀신의 정체를 감춰 궁금증을 자아내며 서스펜스를 고조시키는 묘미도 부족하다. 여학생들이 등장하고 여고가 무대라는 이유만으로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였다면 지나친 억지다.
그나마 수확이 있다면 조안이라는 배우의 발견이다. 수줍은 소녀에서 극단적 폭력을 휘두르는 광녀에 이르기까지 성격 변화가 큰 '엄혜주' 역을 제대로 소화했다. 귀신보다 더 소름이 끼치는 눈매를 보면 오디션에서 탈락할 경우 죽겠다는 각오로 칼을 품고 참가했다는 소문에 믿음이 간다.
아예 다른 작품을 흉내내겠다고 표방한 리메이크작품이 아니라면 창의성이 생명인 영화계에서는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당위성이 통하지 않는다. 특히 돈을 내고 입장하는 관객이라면 더더욱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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