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것은 고양이에 대한 편견이요, 얻은 것은 고양이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다. 만국의 고양이여 기뻐하라.' 혹시 '전세계 고양이 연합'이라도 있다면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에 대해 이런 성명서를 발표할지도 모르겠다.'고양이의 보은'은 이제껏 편견에 시달려온 고양이의 명예 회복 선언이라고 해도 좋을 작품이다. 정겹고 코믹하며 예의바른 고양이의 캐릭터가 마음을 쏙 빼앗는다. 시인 T. S. 엘리어트가 모든 고양이에 대해 각각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꾀바른 고양이를 위한 지침서'를 낸 이후, 고양이들이 가장 반길 이야기라고나 할까.
중세에 오락 거리가 없던 사람들에게'마녀의 친구'로 몰려 화형을 당하고, 에드가 알란 포의 소설 '검은 고양이'처럼 산 채로 파묻히는 수난을 당한 고양이의 역사는 이제 새로 씌어져야 할 것 같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모노노케히메'를 만든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끄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으로, 하야오가 기획하고 그가 키운 신인 모리타 히로유키가 감독을 맡았다.
고양이와 보은이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말의 조합으로 제목을 만든 것부터 심상치 않다.
고양이를 보통 배은망덕한 동물로 여겨 왔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의젓한 왕국과 사무소를 갖고 있다는 상상력이 신선하다. 검은 제복을 입은 고양이의 호위 아래 취주대가 딸린 호위대를 거느린 고양이 대왕의 행차는 얼마나 웃긴가. 여고생 하루가 고양이 한 마리를 교통사고에서 구하지만 않았어도 고양이 왕국은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
마침 목숨을 건진 고양이 룬이 왕자인 탓에 고양이 왕국은 '은혜 갚기 프로젝트'로 발칵 뒤집힌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고양이의 보은이 아니다. 너무 고마운 나머지 하루를 며느리로 삼겠다는 대왕의 보은은 과공비례(過恭非禮)의 전형이다.
저마다 이름과 개성이 다른 고양이의 면면은 더 재미있다. 동네 호수를 다 들이켜서 물고기를 먹을 정도로 대식가인 고양이 무타, 웬만한 신사보다 한 수 위의 신사도를 보여주는 바론, 쇼 진행을 잘못 했다고 부하 고양이를 성 밖으로 던져버리는 독재자 대왕…. 고양이라고 다 같은 고양이가 아니다. 따분한 일상을 벗어나 고양이 왕국에서의 신나는 나날을 꿈꾸었던 여고생 하루는 어떤 선택을 할까. 스튜디오 지브리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보여준 '착한 이데올로기'의 연장선상에서 하루가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
과장된 겸양, 좋아서 까무러친다는 개박하풀 등 '일본 고양이 문화'에 생소한 관객은 더러 놀랄 수도 있다. 흉조로 알고 있는 까마귀가 주연급으로 나오는 것도 놀라움일 수 있다. 일본에서 고양이와 까마귀가 누리는 지위가 한국보다 높다는 사실만 유념하면 유쾌하게 즐길 수 있다. '캣 피플' 등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였고 '캣츠 앤 독스' 같은 작품에서 개와 대비돼 탐욕스럽고 이기적 동물로 나왔던 데 비하면 '고양이 만세'다. 8일 개봉. 전체 관람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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