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 방송이 "정부의 공공연한 정치적 협박으로 우리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성토하면서 이라크 관련 정보 조작 논란으로 시작된 양측의 '전쟁'이 제2라운드에 들어섰다.BBC 이사회의 개빈 데이비스 이사장은 27일 선데이 텔레그라프에 실은 기고문에서 "BBC는 이라크전에 대해 정부와 다른 견해를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공격을 받고 있다"며 재정 삭감 그렉 다이크 사장 퇴출 BBC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법적 근거인 'BBC 헌장'의 강제적 수정 등 정부의 구체적 협박 내용들을 폭로했다. 그는 또 "우리가 정부에 반대하는 무모함을 발휘한 대가로 80년 동안 BBC를 보호해 온 공영방송 체제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례 없이 강도 높은 어조로 정부를 비난했다.
18일 데이비드 켈리 박사의 자살이 몰고 온 충격 때문에 한동안 잠잠해졌던 양측의 설전이 재가열된 것이다. 그 계기는 테사 조웰 문화장관이 25일 "2006년으로 예정된 BBC 헌장의 갱신을 거부할 수도 있다"며 포문을 연 것. BBC는 이 발언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역대 정부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BBC를 길들이겠다'는 의지로 해석했다. BBC 헌장은 이 방송이 정부 재정으로 운영되면서도 정부를 과감히 비판하는 등의 공정성을 유지해 온 기반이기 때문이다.
집권 노동당은 켈리 박사 자살 직후 "BBC를 언론 관련 통합규제기관인 오프콤(Ofcom)의 통제 하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같은 맥락에서 피터 헤인 노동당 하원 지도자는 27일 인디펜던트지에 실은 기고문에서 "BBC는 공영방송이라는 본분을 잊고 타블로이드 신문처럼 행동해 정부에 타격을 주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고 비판했다.
데이비스 이사장의 비난에 대해 조웰 장관은 27일 "정부가 이라크 관련 보도 때문에 BBC에 보복을 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하지만 데이비스는 정부가 BBC의 오보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그들의 독립성을 해치려는 것으로 확대 해석해 여론을 호도해서는 안된다"고 해 끝까지 물러서지는 않았다.
BBC는 다음주 시작되는 켈리 박사의 자살 관련 사법조사위원회의 사전 심리에 대비해 변호인단을 구성, 켈리 박사 동료들의 증언과 켈리의 발언을 담은 테이프, 취재 수첩을 확보하는 등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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