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왕국 일본에서는 웬만한 '대박 작품'이면 발행부수가 수 백만 권쯤은 가볍게 넘긴다. 귀여운 고양이가 주인공인 '도라에몽'은 1970년대 초 연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1억 권 이상의 단행본이 발행됐다. 그러나 연간 출판만화 발행부수가 일본의 100분의 1에 불과한 우리로서는 수 만 권만 팔려도 '빅히트'라며 만화 동네의 화제가 되는 게 요즘 실정이다.우리 출판 만화사에서 최장기 베스트셀러로 기록되는 만화는 이원복(57) 덕성여대 교수의 '먼 나라 이웃나라'다. 이 만화는 1987년 고려원에서 6권짜리 전집으로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 어림잡아 500만 권을 발행한 '울트라 슈퍼급'으로 꼽힌다. 처음 이 만화는 유럽의 여러 나라를 소개하는 내용이었으나, 소련이 붕괴되고 새로운 정치질서가 형성되자 일부 내용을 수정하고 '일본편 2권'을 추가해 2000년 '새 먼나라 이웃나라'(김영사 발행)로 나왔다. 그런가 하면 2002년에는 '우리나라 편'을 추가, '새 먼 나라 이웃나라 우리나라'라는 제목으로 증보판이 나왔다. 이 만화는 외국으로도 수출돼 일본어판(2001년), 영문판(2002년)에 이어 올해 중국어판(대만판·사진)도 발행됐다.
이 작품은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다. 그 속에는 이원복의 지난했던 '젊은 날'의 삶이 오롯하게 녹아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대전의 한 가난한 집안의 5형제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그는 경기중고와 서울대를 나온 소위 'KS'형 수재. 그림에 소질을 보여 고교재학 중이던 1963년에 이미 '소년한국일보'에 미국 만화를 흉내낸 '아이반 호우' '마르코 폴로의 모험' '엉클 톰스 캐빈'등을 연재해 생활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대학 시절에는 학비 조달을 위해 숱한 자책감을 느끼면서도 일본만화를 '베끼는' 창작작업을 했다. 그러다가 75년 바로 위의 형인 정춘씨(중앙대신방과 교수) 등과 함께 독일유학 길에 올랐다. 뮌스터대 디자인학부를 졸업할 때는 총장상을 받았고 같은 대학 철학부에서는 서양미술사도 공부했다. 독일 유학 중에도 만화창작은 계속했는데 이 때 유럽의 이곳 저곳을 여행하면서 창작한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은 '새소년'에 6년간 연재됐다. 이 만화는 '먼 나라 이웃 나라'의 전편인 셈이다.
독일유학시절 학비 조달을 위한 그렸던 학습만화 창작은 그의 인생을 이 방향으로 결정짓는 계기가 됐다. 85년 귀국 후에도 그의 만화창작은 계속됐다. '먼 나라 이웃 나라'는 87년 첫 선을 보였다. 10년간 유럽을 두발로 헤집고 다닌 현실감에다 작가의 해박한 역사인식이 고스란히 담긴 역작이었다. 이 만화는 90년대 초반 서울의 일간신문 기자들이 쟁쟁한 사회과학 전문서적을 제치고 '베스트 인문학 서적'으로 선정해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김정호가 수천 번에 걸친 국토답사를 통해 대동여지도를 만든 한국의 랜드맵(Landmap)이라면, 이 만화는 해외여행과 외국과의 접촉을 통해, 우리 스스로의 눈엔 잘 보이지 않는 한국인의 의식과 사고방식을 나름대로 정리한 한국인의 마인드맵(Mindmap)이라는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손상익·한국만화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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