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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진실인가, 反지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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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진실인가, 反지성인가

입력
2003.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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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토론에서 본 그 후보는 말을 아주 잘했다. 과문해서인지 그보다 언변이 뛰어난 사람을 본 적이 드물었다. 어떤 소재도, 난감해 보이는 주제도 훌륭하게 답변했다. 달변이거나 미사여구를 구사하는 것도 아니었다. 뭉툭한 어법이었다. 보통사람과 상식의 차원에서 펼쳐지는 말이 투명하고 분명해서 알아 듣기도 쉬웠다. 신념이 키워준 말의 견고함도 느껴졌다. 모든 곁가지를 쳐내고, 대화의 본질에 육박하는 지름길을 알고 있는 듯했다.언어감각에 심각한 괴리가 있는 걸까. 취임 후 신문에 실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다. 언론은 대통령의 말실수와 말꼬리 잡는데 혈안이 된 듯했다. 진지하고 성실한 얘기들은 모두 제쳐 두고, 티처럼 섞여있는 거친 말과 비속어, 부적절한 용어 등만 골라내서 연일 시리즈 같이 보도하고 있었다. 4∼5개월을 그렇게 보냈으니, 성인(聖人)인들 배겨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지지도 하락으로 귀결되었다. 한겨레가 최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40.4%에 그쳤다. 취임 1개월 후에 비해 31.0% 포인트나 떨어졌다. 문제점으로는 '대통령에 어울리지 않는 말과 행동'이라는 답이 30.3%로 가장 많았다. 지난달 서울대 행정대학원 김광웅 교수가 수강학생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 바 있다.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대통령 자신이 권위를 실추시키고 정책혼선을 자초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말과 어법이 진중하지 않은 점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 말들은 예전 같으면 가십으로나 취급될 만한 것이었다. 그는 '수평적이고 개방적이고 자율적인 지도력'을 추구하고 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들처럼 격식 있는 말보다는 현장정서에 어울리는 말을 선택하고 있다. 결국 언론의 집요한 이미지 조작 결과, 부정적 인상이 증가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사적인 얘기를 하자면, 최근 한 세미나에서 언론보도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같은 언론에 있어 말하기 거북하지만, 대통령 어법에 대한 언론의 공격이나 시비가 지나치다. 지엽적인 문제를 물고늘어져 정책적 본질을 희석 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도 효력이 다해 간다. 본말을 전도 시킨 방식이 독자나 시청자의 주의를 끄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식상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계속해서 여론조사를 보면, 이 주장의 설명이 될 듯하다. 한겨레 조사의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35.1%, 한나라당 29.5%, 민주노동당 2.9%로 나타났다. 김 교수의 조사도 미래를 낙관하게 해준다. '대통령이 조만간 자리를 잡을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56.9%가 '동의', 15.5%가 '전적으로 동의'라고 답했다. 노 대통령이 '시대에 맞는 훌륭한 대통령인가'에도 82%가 '보통' 이상의 후한 평가를 내렸다.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불평, 라디오로 국민과 정례대화를 시도한 것 등에도 큰 실책인 양 비난의 화살이 꽂힌다. 하지만 고이즈미 일본 총리를 보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그는 2년 전 취임한 이래 국회답변 때만 22 차례나 언론의 보도태도를 직설적으로 비난했다고 한다. 또 올해부터는 매달 한 차례씩 국민과 직접 라디오 대화를 해오고 있다.

비정상적 보도로 품위와 신뢰를 잃고, 또 상처를 받는 것은 화살을 맞는 대통령만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집요하게 공격하는 언론도 그러하다. 정치문화가 하향 평준화하고 있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대통령의 어법이 아니라 정책의 일관성 여부다.

국민과 언론은 북핵과 개혁, 경제 등에서 현실과 과잉타협하고 있지 않은지, 개혁의지를 잃은 것은 아닌지를 감시해야 한다. 대통령도 때로는 타협할 수 있다. 하지만 끝까지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은 더 높은 이상에의 추구다.

박 래 부 논설위원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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