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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바보 노무현, 바보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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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바보 노무현, 바보 김근태

입력
2003.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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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대통령이 됐지만, 어려운 시절의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애칭 중 하나가 '바보 노무현'이었다. 서울의 국회의원 자리를 내던지고 질 것이 뻔한 부산에 내려가 출마하는 등 잘못된 한국정치의 현실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그의 우직함과 용기를 바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바보'라는 단어의 선입감과 달리 정치인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고, 국민들이 바로 그 '바보스러움'을 높이 사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다.그러나 최근의 행동을 보면 노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간 뒤 자신의 최고의 자산인 바보스러움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한 예가 정대철 민주당대표의 폭로로 야기된 대선자금 문제이다.

노 대통령은 문제가 여당의 내부폭로로 야기된 만큼 여당이 먼저 공개를 하고 이를 통해 야당의 공개를 압박해야 한다는 시민단체 등의 요구를 거부했다. 대신 여야간의 동시공개와 특검 등을 통한 수사를 촉구했다. 노 대통령은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이 같은 입장을 직접 밝히면서 여당만 먼저 공개를 하는데 반대하는 이유로 김근태 의원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실을 고백했다가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사실 '바보 노무현'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고, 그런 노 대통령이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힌다기에 기대가 없지 않았다. 대선자금의 전모를 공개하고 한국정치의 현실에서 어쩔 수 없었던 만큼 잘못된 것이 있으면 임기 뒤에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식으로 고해성사를 해 국민을 감동시키고 야당을 압박해 이번 사건이 정치자금 문제에 대한 혁명적 개혁의 기회가 되도록 해주지 않을까. 그러나 이는 잘못된 기대였다.

어쨌든 노 대통령과 역할분담을 한 것인지 모르지만 민주당은 노 대통령의 반대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대선자금내역을 공개했다. 물론 그 내용은 너무도 문제가 많은 면피성이었고 한나라당이 이를 문제 삼고 나왔다. 그러나 일단 민주당이 공개한 이상 "이번은 한나라당 차례"라는 여론이 비등하면서 공은 한나라당으로 넘어갔고 이에 한나라당은 대선자금공개요구가 정계개편 음모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주목할 것은 이후 대선자금 문제가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계속 들고 나올 경우 자신들의 대선자금을 공개하라는 요구에 부딪히게 되는 한나라당이 공세를 중단한데다가, 다른 문제들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대선 자금 위기를 별 탈이 없이 넘겼으니, 노 대통령의 '영특한' 대응이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별로 기쁘지 않다. 왜냐하면 바보스러운 고해성사에 의한 국민적 감동도 없었고, 정치자금의 혁명적 개혁의 기회도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선자금 문제는 불시에 또다시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실망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노 대통령의 '바보병'이 전염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정당체제 극복과 범개혁신당 건립을 위해 한나라당의 기득권을 버리고 탈당을 한 '바보 이부영', '바보 김부겸' 등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 6명이 그 한 예이다.

정말 감동적인 것은 노 대통령이 웃음거리가 됐다고 지적한 김근태 의원, 아니 '바보 김근태'의 '바보'발언이다.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은 뒤 며칠 후 김 의원은 문제의 정치자금 고해성사로 받고 있는 재판의 최후진술에서 "우리 사회는 원칙과 상식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하면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추해지도록 만드는 야만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며 "이런 야만을 그냥 둔 채로 저만을 예외로 해달라는 '선처'를 간청할 생각은 없다"는 '바보발언'을 다시 했다.

노 대통령이 영리해진만큼 김 의원은 바보스러워지고 있다. '바보 김근태'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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