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군 위도는 풍광이 비할데 없이 아름다운 섬이다. 위도 백사장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낙조는 비경으로 꼽힌다. 지금은 어획량이 크게 줄었지만 위도는 한때 서해의 3대 조기 산란장이었고, 4, 5월에는 각지의 어선이 모이는 파시(波市)가 섰다. 위도에 홍길동이 건설한 이상향인 '율도국'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 것은 이 같은 천혜의 절경과 풍부했던 어자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위도에는 아픈 기억이 있다. 1993년 10월10일 서해훼리호 침몰사고로 승객과 선원 등 292명이 숨졌다. 희생자 가운데 위도 거주 주민이 67명이었다. 위도 파장금(波長金)항에 설치된 희생자 안치소에서 시신을 부여잡고 대성통곡하던 주민들의 모습은 당시 현장을 취재한 기자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위도의 주민들이 다시 원전수거물(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 유치 결정으로 뉴스의 중심이 되고 있다.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대다수 위도 주민들은 17년 동안 공전을 거듭해온 방사성 폐기물 시설 부지 결정 문제에 종지부를 찍어주었다. 그러나 최종 후보지로 결정된 뒤 위도 주민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뭍의 부안군에서 연일 '핵 폐기장 유치 반대' 시위가 잇따르고 "저희들 혼자 잘 살려고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탓일 것이다.
위도 주민 대다수는 왜 전국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방사성 폐기물 시설 유치를 찬성했을까. 현지발 언론 보도를 보면 위도 주민들도 부안군민들처럼 '핵 폐기장이 들어서면 섬에서 난 농수산물이 팔리지 않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길 것'이라며 안전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주민들은 보상금 때문에 방사성 폐기물 시설 유치에 찬성했다는 것을 굳이 감추진 않고 있다. "당장 먹고 살기도 팍팍한디 후대가 뭔 소용이여"라는 한 주민의 말은 '선택'이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위도 주민들이 안전문제에 대한 불안감, 지역사회 이웃들과의 반목과 갈등, 관계 단절까지 감내하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한 '불가항력'은, 다름 아닌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농어촌의 현실'일 것이다. 최근 어느 대학 교수는 신문 칼럼에서 '3,000억원의 개발지원금 때문에 (후보지로) 단독 신청했다니 가슴이 아프다 못해 기가 막힌다'고 했지만 기자는 그 탄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방사성 폐기물 시설 유치와 관련해 탄식과 비판을 한다면 그 대상은 위도 주민들로 하여금 힘든 선택을 하게 한 농어촌의 궁핍한 현실, 그런 현실을 방치한 위정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농어촌과 농어민은 국내외의 환경 변화에 크게 위협받고 있다. 농어업을 포기하는 인구가 속출하면서 농어촌의 고령화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해마다 수익이 줄고 심지어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 업(業)을 유지하기 위해 빚을 내 보지만 다시 빚만 쌓이는 것이 우리 농어업의 현 구조다. 여기에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국회 비준을 기다리는 등 값싼 외국산 농수산물은 한국시장을 뒤덮을 기세다.
이런 현실 속에서 방사성 폐기물 시설 유치에 따른 보상은 위도 주민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당근' 아니었을까. 주민 직접 보상 논란은 '이번 문제만 처리하고 넘어가면 된다'는 정부의 안이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도와 부안군 지역 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농어촌을 살릴 수 있는 근본적인 '보상'이 없는 한 혐오시설 설치와 관련된 갈등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
황 상 진 사회1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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