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들에게서 공부가 삶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 문제입니다." 프랑크푸르트 경제개발청의 하트무트 슈베징어 청장은 독일의 경쟁력 약화가 교육수준의 전반적 하락과 연관이 있느냐는 질문에 동감을 표시하며 이렇게 대답했다.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노벨상을 휩쓸던 독일인들의 지적 경쟁력이 급속히 약화하고 있다. 2002년말 현재 역대 노벨상 수상자 615명중 독일인은 전체의 11.8%인 73명. 미국(226명)과 영국(96명)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많다. 그런대로 괜찮은 성적이다.
그러나 시기별로 구분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1901년부터 1910년까지 노벨상을 수상한 독일인은 15명으로 전체 수상자(62명)의 24%에 달한다. 그러나 90년이 흐른 1991년부터 2002년 기간에는 복수 수상의 경향으로 134명이 노벨상을 받았으나, 이 가운데 독일인은 7명으로 5.2%에 불과하다. 무리한 비교이기는 하지만 노벨상 수상 기록만으로 따지면 독일의 지적경쟁력이 한 세기만에 5분의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독일 지식인들을 긴장시키는 통계는 이 뿐만이 아니다. 독일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초등학생의 학력이 최하위권에 속한다. OECD에 따르면 국제학력평가계획(PISA)과 공동으로 전세계 32개국의 학력수준을 평가한 결과 독일은 25위를 차지했다. 또 이탈리아 인노센티 연구소 분석결과 한국과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교육제도를 갖고 있는 반면, 독일은 조사대상 24개국 중 19위에 머물렀다.
독일의 지적 경쟁력이 악화하는 이유는 노동, 금융, 기업 분야의 경쟁력 약화와 마찬가지로 경쟁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다. 독일에는 대학간 서열차이가 없고, 따라서 우수학생을 끌어오려는 대학간 경쟁이 전무하다. 우리나라에서 고교 평준화 이후 학력저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독일을 구성하는 16개 연방 중에서 보수색이 강해 경쟁시스템이 남아있는 바이에른주 학력수준이 다른 지역을 압도하고 있다는 점도 독일 교육의 문제는 경쟁의 문제라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독일 사회가 직면한 또다른 문제는 우수 인력의 해외 유출과 급속한 인구 노령화이다.
독일의 20대 청년 중 상당수가 미국을 동경하고, 실제로 최근 미국으로의 유학생이 급증하고 있다. OECD에 따르면 70년대까지만 해도 1만명 이하로 통계에도 잡히지 않던 독일의 미국 유학생 숫자가 급증, 2000년에는 8만명까지 늘었다. 독일의 부유층들이 악화한 교육여건과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을 감안, 자녀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있는 것이다.
교포 3세로 프랑크푸르트에 살고 있는 이유진씨는 "과중한 세금부담 때문에 독일에서는 구조적으로 젊은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큰 돈을 벌 수 없다"며 "능력있는 독일의 젊은이들 대부분이 미국식 체제를 동경하며, 실제로 미국에 건너가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인구 감소와 인구의 노령화도 독일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독일의 보수적인 이민 정책과 여성 1인당 1.4명에 불과한 출산율이 계속될 경우 2003년 현재 8,300만명인 독일 인구는 2050년에는 6,700만명으로 급감하게 된다. 독일경제연구소 루돌프 쯔비너 수석연구위원은 "현재의 사회기반시설만으로도 8,000만명 이상이 충분히 살 수 있는 독일의 인구가 6,000만명대로 떨어지는 것은 국력의 약화를 뜻한다"며 "독일이 유럽의 경제대국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독일 정부의 적극적인 이민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구 감소보다 심각한 것은 인구 노령화이다.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더라도 2050년 독일의 평균 기대수명은 남자 78.9세, 여자는 85.7세가 된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평균 수명은 늘어나는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50년에는 노동 인구 2명이 1명의 연금 생활자를 감당해야 한다. 노동 인구 4명이 1명의 은퇴자를 먹여 살리는 현재 상황도 견디기 어려운 독일 경제로서는 기존 연금체계의 파격적인 개혁말고는 돌파구가 없는 셈이다.
근대 철학의 태두인 임마누엘 칸트, 상대성 원리의 발견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을 낳은 독일이 빛을 잃어가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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