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자가 여러 사람의 비리 의혹을 확인해왔는데 나는 그 가운데 2, 3명의 이름을 시중 '정보지'에서 본 적이 있어 '본 것 같다'는 수준의 언급을 한 것에 불과하다." 청와대 박범계 민정2비서관이 큰 파문을 일으켰던 굿모닝게이트 로비 의혹 정치인 명단 발설자로 지목되자 이렇게 해명했다. 그러나 곧 이어 "최고 권력기관인 청와대의 막강 민정수석실에서도 본다는 정보지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이야기들이 터져 나왔다.일반인들은 존재 자체도 감지하기 힘들지만 아는 사람을 중심으로 은밀히 나도는 정보지. 이를 만들고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보지는 '찌라시'라는 속칭으로 통한다. 찌라시는 '쓰레기 같은 정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그러나 이 찌라시에는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 움직임, 정부부처의 정책 채택 방향, 개별 기업체의 현 상태, 연예인 재벌총수 정치인의 뒷이야기 등 세상사의 앞뒤를 까발리는 글들이 A4 용지 수십장 분량으로 총집합해 있다.
최근 작성된 30페이지 분량의 한 정보지에는 'A기업이 편법 상속과 투기로 부실 우려가 있다' 'B기관이 C기관 고위층의 사우나 골프장 건설 관련 비리를 조사하고 있다' '청와대 D인사의 취미 활동' 'E기업 후계자 결혼 전망' 등의 내용이 실려 있다. 이슈로 떠오른 굿모닝시티 분양비리 사건과 관련해 연루된 사람들의 리스트도 정보지에서는 실명으로 나돌았다. 한 증권사 직원은 "모두 믿기는 어렵지만 행간을 읽으면 유용한 정보가 많다"고 말했다.
정보지에 담기는 각 아이템은 금융권 기업체 등의 정보업무 담당 직원이 발로 뛰며 찾아낸 이야기를 기초로 한다. '정보맨'으로 불리는 이들은 주로 기업체나 금융기관의 30, 40대 과장급 직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만나는 사람은 다양하다.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검찰 금융감독원 등 권력기관의 실무 직원들과 국회의원 보좌관, 기자, 기업체 실무 책임자, 학연 지연 등을 통해 형성된 관계자 등이 주요 접촉 통로. "필요한 사람은 누구든지 만난다"는 것이 정보맨의 공통된 설명이다.
그러나 이들은 한 사람이 수집한 정보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1주일에 1차례 정도 정례 모임을 갖는다. 7, 8명의 정보맨이 모여 각자 수집한 정보를 내놓고 다른 정보맨의 이야기를 메모하며 분석하는 자리다. 이들이 주로 모이는 장소는 여의도 인근 단란주점. "점심시간에는 술을 팔지 않고, 개방되지 않은 룸이 있어 다른 사람의 이목을 쉽게 끌지 않기 때문"이라고 정보맨 A씨가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러한 모임이 1주일에 200∼300개 정도 열린다는 게 정설이지만 대부분 증권사 직원들이 투자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자리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정보맨 A씨는 "진짜 '정보회의', 내부적으로 '사이드'(Side)라고 부르는 것은 각기 다른 모임에 소속된 대기업과 경제 관련기관 정보맨, 국회의원 보좌관, 기자 등이 참여해 사회 각계의 소식이 유통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런 자리에서 나온 정보를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와 비교 분석한 뒤 새로운 정보로 가공하고, 다시 다른 정보맨과 정보를 맞바꾸는 방식으로 확대 재생산돼 정리된 결과물이 바로 정보지다. 여의도에서 활동하는 다른 정보맨 B씨는 "청와대 국정원 검찰 국세청 등 소위 권력기관에 소속된 사람들은 이런 회의에 정례적으로 참석하지 않고, 보통 친분이 있는 2, 3명이 가끔 만나 저녁 술자리를 가지면서 정보를 교환하는데 여기서 나온 이야기 역시 정보지의 핵심적인 내용을 이룬다"고 밝혔다.
이러한 정보회의는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재벌 빅딜 정책 이후 활성화했다는 분석이 정설이다. A씨는 "이미 정보팀을 운영 중이던 S, H그룹에 비해 정보력이 뒤쳐져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한 L, H그룹 등이 정보팀을 구성했고 기업의 이익과 고위 경영자의 사생활 보호라는 목적 때문에 계속 유지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정보맨은 증권 은행 기업평가회사 등에서 각개로 움직이는 정보맨과 교류하게 됐고 여기에 정보를 필요로 하는 정부 권력기관도 달려들기 시작했다.
국회의원 보좌관 C씨는 "정치권 역시 많은 정보가 필요한 곳이기 때문에 의원들도 찌라시를 자주 보는 편"이라며 "정보를 줘야 정보를 받을 수 있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정가 소문을 모으는 보좌관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의 전직 정보맨 출신 D씨는 "최고경영자끼리 골프를 치거나 가볍게 만날 때 찌라시에서 읽고 들은 정보 하나 때문에 대화 주제를 놓쳐 정보의 흐름에 뒤쳐져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 그룹 고위층도 관심을 보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정보 관련 모임은 조금 침체된 분위기다. A씨는 "경찰과 국정원이 이달 들어 사설 유가 정보지 업체를 훑고 다닌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정보맨들의 정보지 작성 자체가 줄어들었다"며 "이슈가 되는 굿모닝게이트 현대비자금 사건 등과 관련된 고급정보가 전혀 나돌지 않는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맨들이 민감한 문제를 다루는 만큼 정국과 사회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B씨는 "정보는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나름의 순기능을 갖고 있고 발산 유통되면서 폭발력을 갖는 것이 당연한 특성임에도 불구하고 정보지를 악성루머의 진원지로만 매도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 신뢰도는 어느 정도
'정보의 출처를 알려 하지 말고, 진실여부를 확인하려 들지 말며, 함부로 유통시키지 말라.' '정보맨'들의 세계에서 통하는 불문율이다. 출처와 사실이 확인된 정보는 정보가 아닌 뉴스이다. 또 출처가 드러난 정보 라인은 더 이상 '거래'를 할 수 없어 이 업계에서 퇴출된다.
하지만 제법 관심이 높은 정보에는 언제나 불문율을 깨는 우문과 현답이 반복된다. 요즘 활발히 유통하는 굿모닝 시티의 정·관계 리스트만 해도 어디까지 믿어야 할 지가 모두의 고민거리다.
정보계통에 있는 사람들은 찌라시를 적어도 40% 정도는 믿어 줘야 한다고 말한다. 정보를 가공할 때는 3개를 알아도 5, 6개를 안다고 뻥튀기 한다는 게 정보맨들의 솔직한 고백. 뒤집어 보면 비록 전부는 아니더라도 절반의 신뢰성은 있다는 얘기다. 각 분야나 기관별로 볼 때, 정치쪽에선 의도된 왜곡 정보가 많은 편이고, 경제쪽은 나름대로 사실들로 구성되는 것이 다수라서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그러나 찌라시의 파워는 이 40%만 믿을지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접한 사람들이 부족한 나머지 60%를 채우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는 데 있다. 정치 경제 등 정보 취급자의 위치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분야가 있기 마련이고, 그 정보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면 맞는 것에 살이 붙고, 틀리는 것은 제거되면서, 결국은 100%의 정보가 완성된다.
환란시절 하루에도 몇 개씩 부도나는 회사에 대한 정확한 정보로 명성을 날린 여의도 정보맨 A씨는 "정보가 돈다는 것은 무언가 움직임이, 배경이 있다는 것이고, 그러면 퍼즐 맞추기가 시작된다"며 "100%가 채워져 유통되면 파급효과는 엄청나다"고 말한다. 굿모닝시티 리스트도 지금 50명이 있다면 2, 3주 이런 식의 확인을 거쳐 새로운 리스트가 완성되고 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찌라시 읽어내기'에는 절반의 신뢰와 절반의 이해력이 필요한 셈이다. 찌라시라는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딱지가 붙어 있지만, 아는 만큼 찌라시의 활용도는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 왜 힘을 갖는가
'찌라시'는 필요악인가. '재야 언론'으로 득세하고 있는 정보지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의 왜곡된 커뮤니케이션 구조에서 찌라시 정보가 힘을 얻는 이유를 찾는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강상현 교수는 "언론이 나름의 안경을 쓰고 사안을 바라보는 경향 때문에 필연적으로 뉴스 이면을 전하는 '제2의 언론'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윤석민 교수는 찌라시가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그는 "일종의 익명 정보게시행위와 비슷한 정보지가 소통되는 것은 '비사(非史) 커뮤니케이션'의 일종인데 권위주의 정부 때에는 과거의 비사가 많았고 요즘은 현재의 비사가 주로 다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분석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박승관 교수의 저서 '드러난 얼굴과 보이지 않는 손'에 잘 나타나 있다. 박 교수는 이 책에서 "연고주의와 일방적인 의사 전달만이 능사였던 권위주의적 정치 지배 등 우리 사회·정치구조의 특징 때문에 이면의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등장한다"며 "우리 의식 밑바탕에는 일의 실제 흐름을 알기 위해서는 막후 세력들의 암중모색을 읽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이런 과정을 통해서 비공식적 부문에 대한 정보 수요가 커지고 공식적 발표 기관의 권위는 불신 받을 수밖에 없다"며 "선정적인 내용을 담은 주간지들이 쏟아져 나오고 커뮤니케이션 참여 주체인 국민들은 늘 속고 산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성신여대 경제학과 강석훈 교수는 "비공식적인 소문의 확산을 통해 우리 시장의 불확실성이 심화되면서 경제 주체의 혼란이 더욱 커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신재연기자 poet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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