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불편하면 지워버리려고 애를 쓴다. 애써도 불편한 마음은 정리되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갈등이 있으면 두 가지 상반되는 것들이 마음 속에서 부딪히고, 내 마음은 나에게 갈등이 있음을 알리려고 한다. 불안이라고 하는 감정상태는 마음 속의 '빨간 불 신호등'이다.평소 불안을 전혀 느끼지 않으면 가장 건강한 상태인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갈등으로 불안해지면 불안을 자꾸 억압하려고(의식에서 무의식 세계로 밀어내려고) 한다. 억압은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므로 무엇을 왜 억압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억압은 증상을 만들어 낸다.
증상은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가슴이 답답함, 두통, 복통, 하혈, 어지러움, 호흡곤란 등 거의 모든 종류의 신체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응급실에서는 진찰이나 검사를 해도 설명이 잘 안 되는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를 정신과와 같이 보려고 한다. 그 환자가 정신병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불안이나 우울과 관련된 신체증상이 아닌지를 확인해 보는 절차이다.
불안으로 유발되는 신체증상으로 대표적인 것이 가슴이 뛰거나 답답한 증상이며 환자들은 흔히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는 걱정을 하게 된다. 심장내과에서 정밀검사를 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으면 환자는 안도하기보다 오히려 초조해 한다. 소위 첨단검사로도 밝혀낼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렸다는 공포에 사로 잡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병원에 가서 같은 검사를 또 받는다.
환자가 신체증상에 매달리는 뒷면에는 불안을 유발시킨 갈등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작용하고 있다. 갈등이 있어 남편을 증오하게 되었지만 미운 감정을 대놓고 표현했다가는 늘 그랬듯이 심하게 폭행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아내가 흔히 있다. 아내로서는 대화로 풀리지 않는 갈등보다 남편에게도 인정과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가슴의 통증'이 훨씬 더 부가가치가 있는 것이다. 절대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은 이러한 모든 것이 무의식 세계에서 일어나므로 꾀병과는 전혀 뿌리가 다르다는 점이다.
몸이 아픈 사람들이 사실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는 것이 의사로서는 명의가 되는 길이다. 환자로서는 소용없는 '병원 순례'를 피할 수 있는 길이다. 의료보험 재정 절감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음이 아파서 생긴 몸의 증상을 몇 가지 검사만 하고 나서 "전혀 이상이 없다", "신경 쓰지 않으면 좋아질 것이다"라고 무신경하게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무의식 속에서 움직이는 갈등과 그 산물인 불안의 힘은 너무나 강해서 아무리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도 막아낼 수 없다.
갈등, 불안, 억압, 신체 증상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으려면 갈등을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것은 정신분석적 치료의 몫이다.
정 도 언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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