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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로맨스의 화가 김흥수 <16> 국적사칭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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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로맨스의 화가 김흥수 <16> 국적사칭 소동

입력
2003.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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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12월 나는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나는 작품도 몇 점 들고 갈 수 있고 저렴하게 여행도 즐길 수 있는 배편을 이용했다. 일단 도쿄로 가서 홍콩까지 비행기로 간 후 거기서 한 달에 한 번 떠나는 프랑스 여객선 칸보지아호를 타고 마르세이유까지 긴 항해를 했다. 나는 여권을 빼앗겨 떠나지 못하고 있던 동안 나보다 먼저 도쿄에 와 있던 화가 N씨를 만나 그와 동행하게 되었다.이듬해 1월 파리에 도착한 나는 고독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도착하자마자 일본인 화가들이 일본대사관 주최로 '재불 일본인 화가전'을 열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무척 부럽기도 하고 공연히 위축감도 느꼈다. 그런데 6월에 재불 외국인 미술전람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예술의 본고장인 파리에서의 데뷔 무대였기 때문에 이 전람회에 대한 나의 기대는 자못 컸다.

나는 한국 공관의 추천을 받아 누구보다 먼저 출품을 했다. 그것은 내가 접수할 때 몇 사람이나 왔느냐고 물었더니 당신이 제일 먼저라고 말해서 알았다. 이 전시회는 초대전이 아니라 심사를 거쳐야 했는데 일본 화가는 절반이나 떨어졌지만 한국에서는 두 사람 모두 입선하였다.

이 전시회에서는 프랑스식 표기에 따르지 않고 영어식 표기에 따른 나라 이름 순으로 전시했기 때문에 일본(J) 다음에 한국(K) 작품들이 전시돼 마치 우리가 일본인 행세를 하면서 출품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한국의 한 신문에 엉뚱한 기사로 나와 곤욕을 치러야 했다. 프랑스에 체류하는 모든 외국인 화가들이 참가할 수 있는 이 전시회에 나와 N씨가 한국인은 출품 자격이 안돼 일본인으로 행세하면서 작품을 냈다는 내용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기사였다. 한때의 소동으로 끝나긴 했지만 국내 미술계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우리가 추한 사람으로 비쳤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나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 쓴 웃음이 나기도 한다.

이 소문의 진원지는 파리에 와 있던 대한미술협회 간부의 가족들이었다. 그들은 우리 이름이 일본인들과 나란히 있는 것을 보고 우리가 일본인 행세를 한다고 지레짐작하고 대한미술협회에 알려 미술협회에서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는 한국 전쟁 이후 파리에 유학하는 것이 처음이라 모든 화가의 신경이 곤두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조그만 일조차도 제멋대로 해석해서 자기들 입장에 유리하게 이용한 것이다. 그것은 미술협회가 우리 입장을 변호하기는커녕 누구보다도 앞장 서서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미술협회가 긴급회의를 소집했을 때 미술 관계자들은 "사실이라면 조국에 대한 명백한 반역이며, 미술인들의 명예를 실추시킨 행위"라고 떠들었다. 당시 문교부와 외무부는 진상규명에 나섰고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면 두 사람 모두 소환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터무니없는 의혹은 자연스럽게 풀렸다. 국제펜클럽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를 찾은 변영로씨 등이 전시회장에서 작품 밑에 있는 두 사람의 영문 이름을 확인했고, 입선작품 목록에도 분명히 일본 이름이 아닌 한국이름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교통과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심리적 타격을 우리에게 주었다.

나는 이 전시에서 빚어진 N씨와의 악연도 잊을 수 없다. 당시 파리의 한국작가는 N씨와 나밖에 없었다. 따라서 서로 가깝게 지내며 내왕도 잦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유독 N씨와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재불 외국인 미술전람회에 출품을 위한 추천을 받으러 한국 공관에 갔을 때 그의 행동은 지나쳤다. 추천서를 써주는 공관장이 "김흥수 선생도 추천해야 되지 않느냐"고 하자 그는 "김흥수는 아직 학생인데 벌써부터 국제전에 내게 하느냐"는 말을 했다고 한다. 공관에서는 "두 사람 다 내야 한다"고 하면서 나를 추천해 주어 내가 출품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났지만 참았다. 그런데 얼마 후 결정적으로 그와 부딪히는 불상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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