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 참전했던 21개국의 노병(老兵) 1,500여명이 서울에 몰려와 '잊혀진 전쟁'을 환기시키고 있다. 정전협정 50주년 기념 행사에 참가한 노병들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도 새삼 가슴이 메인다.1950년 6월25일에 터진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맺으며 중단됐다. 남과 북에서 2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채 덧없이 중단된 전쟁은 반세기를 넘기며 세계역사상 최장의 휴전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전 참전국들은 정전 50주년을 잊지 않고 있다. 500만명을 파병하여 전사 3만4,000명, 부상 10만3,000명, 실종8,000명의 희생을 치렀던 미국은 다양한 기념행사를 갖고 있다. 부시 대통령도 워싱턴의 한국전 기념공원을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2차 대전과 월남전 사이에서 '잊혀진 전쟁'으로 묻혔던 한국전쟁은 북한 핵 논란 속에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새롭게 조명 되고 있다.
전사 670명, 부상 2,300명, 실종 118명의 희생자를 냈던 영국도 정전 50주년 기념 행사들을 갖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희생자 추모 미사에는 참전용사들과 함께 엘리자베스 여왕이 참석했다.
정전협정은 남한에게 '통한의 협정'이었다. 남북한 인구의 7%에 해당하는200만명의 사상자를 낸 동족상잔의 전쟁이 아무런 성과 없이 휴전으로 끝나는 것을 남한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북진통일'과 '휴전 결사반대'를 외치는 격렬한 시위 속에 유엔군 북한군 중국군 사령관 간에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끝까지 정전협정을 거부하는 정치적 선택을 했다.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50년 동안 고수해 왔고, 정전 기념일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정전 50주년을 한국사의 한 이정표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정전협정 당사자가 아니라는 입장에도 더 이상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6·25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종전(終戰)이 아닌 정전으로, 평화협정 없이 전쟁이 중단된 후 50년 동안 126만 건의 크고 작은 정전협정 위반 사건이 일어났다. 불안한 평화 속에 남한은 번영을 구가해 왔다.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군사독재도 종식시켰다. 이제 남은 것은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남한이 번영을 이룩하는 동안 북한은 세계에서 고립된 전체주의 국가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50년 전이나 오늘이나 북한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나라다. 한국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이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은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실감을 더해 준다.
우리는 6·25에 대해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말을 자주 써 왔다. 동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북측의 만행으로 부모형제를 잃고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용서하자"는 것은 힘든 말이지만, 우리는 그 이외의 길이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북한이 밉든 곱든 공존공영 이외의 선택은 없다. 용서 없이 전쟁의 악순환을 되풀이 할 수는 없다. 용서 없이는 전쟁을 종식시킬 수 없다.
20세기에 발발한 전쟁이 21세기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한반도의 현실이다. 전쟁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민족적 소모가 너무 크다. 국민의 10%가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극심한 경제난 속에 북한은 국민총생산(GDP)의 25%를 국방비에 쏟고 있다. 남한도 GDP의 3∼4%를 국방비로 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남북관계를 진전시켜야 한다. 전쟁을 기억하기 때문에 공존정책이 필요하고, 북한이 위험한 집단임을 알기 때문에 인내가 필요하고, 동족이기 때문에 도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는 이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대북 송금 사건 등을 겪으면서 앞으로의 남북관계는 투명해야 하고 최대한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된 상태다.
전쟁을 기억하자는 것은 응징을 위한 것이 아니다. 평화 공존이란 공허한 슬로건이 아니다. 그것은 온 국토를 동족의 피로 적셨던 전쟁을 치르며 얻은 교훈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6·25를 잊지 말아야 한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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