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내평생 잊지못할 일]화구·거짓말… 어머니의 눈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내평생 잊지못할 일]화구·거짓말… 어머니의 눈물

입력
2003.07.28 00:00
0 0

"너는 싫증도 안 나니, 그림 공부만 하게."내가 어렸을 적부터 들었던 어머니의 꾸중이셨다. 그러나 온종일 그림만 그려대는 나에게는 '그림도 공부'라는 철학을 심어준 말씀이기도 했다.우리 가족은 한국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졸지에 편모 슬하에 피란민 신세가 되었다. 어머니는 광주리 장수가 되었고 형님은 목발이 끌리는 지게를 져야 했다. 두 분 모두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지만 나만은 공부하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이런 형편 속에서도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은 주체할 수 없었다. 숫기가 없던 나를 엿장수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화구를 사기 위해서였다. 눈치를 채신 어머니는 그 알량한 장사 밑천에서 돈을 떼어주었고 나는 시장바닥에서 엿 장사를 시작했다. 평소 수채물감을 보아두었던 문방구상 앞에서의 개업 첫 날은 성공적이었다.

빈 엿 목판을 들고 구겨진 지폐 조각을 헤아리면서 수없이 망설이던 나는 용기를 내어 문구점으로 들어갔다. 갖고 싶었던 화구를 사고 보니 다음날 장사 밑천까지 다 털어야 했다. 순간 노한 어머니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지게질을 해서 어깻죽지에 피딱지가 앉은 형님의 얼굴도 그 위에 겹쳐졌다. 그래도 화구만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비장한 결심이 생기면서 순간 묘안이 떠올랐다.

빈 엿목판을 문방구점 주인에게 맡겨놓고 화구만 챙겨 든 나는 집에 들어가 마루 밑의 흙을 대강 파내고 감쪽같이 묻어버린 다음 살금살금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냉기 서린 빈 방에서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 쓴 채로 벌렁 누워 있었다. 모두가 내 각본대로 연출을 해가려는 것이다. 밤늦게 지쳐 돌아온 어머니와 형님 앞에서 첫 장사 결산보고를 하면서 깡패들에게 끌려가 돈을 모두 뺏기고 겨우 몸만 빠져 나왔노라고 둘러댔다. 난생 처음 이토록 당돌한 거짓말을 해대는 어린 가슴은 두근두근 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야속하게도 끝내 추궁하시며 "가난은 죄가 될 수 없으나 거짓은 큰 죄가 된다"고 하셨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숨겨둔 화구를 어머니 앞에 내놓았다.

한참을 침묵하던 어머니는 비장한 표정으로 회초리를 꺾어오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어머니는 종아리에 핏발이 배어나올 때까지 회초리를 내려 놓지 않으셨다. 그러나 회초리를 들고 계신 어머니의 눈가엔 이미 이슬방울이 맺혀 있음을 훔쳐 볼 수 있었다. 다음날 어머니는 더 좋은 화구를 한 아름 안고 오셨다. 그리고 세 모자는 부둥켜 안은 채 한 없이 울기만 했다.

나는 이제 화업(畵業) 40년, 미술대 교수로 정년을 맞는 이날까지 그때 그 어머니의 눈물과 '그림도 공부'라는 생각을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

이 종 상 서울대 미술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