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7월28일 강력한 지진이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탕산을 뒤흔들었다. 탕산은 톈진(天津) 북쪽 약 100km 지점에 자리잡은 인구 684만의 광공업도시다. 지진 당시의 인구는 200만 가량이었다. 이 날 지진은 도시 대부분을 폐허로 만들며 최소한 24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75만 명 이상이 죽었다는 비공식 보고도 있다. 중국 당국이 국제 원조를 거부하고 자구(自救)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탕산 대지진의 정확한 실상은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이 날 탕산은 두 차례의 커다란 지진을 겪었다. 새벽 3시42분의 첫번째 지진은 리히터 규모 8.2에 이르렀고, 16시간 후에 찾아온 두번째 지진은 리히터 규모 7.4에 이르렀다. 2분 동안 지속된 첫번째 지진으로 이미 탕산은 지옥이 되었다. 하늘로 불길이 치솟고 건물들이 장난감처럼 무너지면서 사람들이 산 채로 묻혔다. 끔찍하게 생매장된 사람들 가운데는 야간 작업을 하고 있던 광부 12,000여 명도 포함돼 있었다. 한 생존자는 그 날의 탕산이 "이 도시의 이름과 달리 산이 아니라 바다였다. 모든 것이 움직이고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바다였다"고 증언했다.
탕산 대지진은 이 도시에서 160km나 떨어진 베이징(北京)에서도 낡은 건물들을 무너뜨렸다. 베이징 시민들은 공포에 질려 거리로 뛰쳐나왔고, 일부는 임시 천막과 이불을 비롯한 생필품을 들고 옥외 생활을 시작했다. 진앙(震央)인 탕산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지진이 일어난 날부터 보름 이상 탕산 주변에 살던 수백만 주민이 집에 들어가지 않고 한뎃잠을 잤다. 일부 서방 관측자들에 따르면, 이런 커다란 혼란 속에서도 탕산에서 범죄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그것은 그 당시 중국인들의 '사회주의적 심성'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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