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솔직히 말해서' 라는 말을 쓰곤 한다. 그러면 그 이전에 한 말은 다 솔직하게 말하지 않은 거냐고 추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말꼬리 잡고 늘어질 일은 아닌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라는 말의 용법을 몇 가지 살펴보자."이 옷 어때?" 그렇게 묻는 동료에게 '형편없다'가 내 진심일망정 꼭 그렇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좋은데'라고 답하는 게 무난하다. 그건 기만도 위선도 아니다. 예의다. 그러나 동료가 정색을 하고 솔직히 말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한다면, 그 경우엔 자기 생각을 솔직히 말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왜 신문 칼럼을 쓰세요?" 그렇게 묻는 사람에게 '지식인으로서의 사명'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한 답이지만, 그건 공적(公的) 측면을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적(私的) 측면을 말하자면, 사람들이 날 알아주는 맛이라거나 만만치 않은 원고료의 매력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 경우 '솔직히 말해서'라는 말을 쓸 수도 있다.
"한국 정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게 묻는 사람에게 "썩은 정치 때문에 국민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답은 솔직한 것이다. 그러나 '총론'이 아닌 '각론'으로 들어가면, "사실은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의 등을 쳐 먹고 있지요. 정치인들은 기업을 등쳐먹고, 기업은 소비자들 등쳐먹고, 그런 식으로 모두 다 서로서로 뜯어먹고 사는 세상 아닙니까?"라고 말할 수도 있다. 분명히 그런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솔직히 말해서'라는 말을 쓸 수도 있다.
그밖에도 다른 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위의 세 가지가 가장 흔한 용법일 것이다. 그런데 '솔직의 위계질서'라는 게 있다. 권력이건 금력이건 힘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솔직'과는 거리가 멀어져야 하는 반면, 힘이 없을수록 '솔직'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지상에 유통되는 언어는 상층의 언어다. 예의를 지켜야 하고, 공적이어야 하고, 총론에 충실해야 한다. 그건 전통이자 관행이다. 공직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설사 계급적으론 하층에 속할망정 공직자는 상층의 언어를 구사해야만 한다.
공직의 최고봉이라 할 대통령의 경우엔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한국에 이변이 생겼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존의 전통과 관행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 전에도 그걸 지키지 않은 대통령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총칼 또는 촌지 등과 같은 방법으로 '언론 포섭'을 확실하게 했기 때문에 언론 스스로 여과장치 노릇을 자처했다. 미화(美化)까지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포섭'을 포기하고 수구 신문들의 허물을 지적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날조와 과장과 왜곡'까지 불사해가면서 대통령의 '솔직'을 대통령 자질의 문제로까지 몰고 가는 광기를 드러냈고 그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이젠 초등학생까지 "노무현 대통령은 말을 너무 막 한다"는 정치평론을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일부 국민은 솔직하지 않다. 지난 대선 때엔 퇴근 후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드러낼 수 있는 '솔직'으로 표를 던져놓고, 이제 와선 아침 출근길의 '순응의 정신'으로 노 대통령을 평가하고 있다. 우리 모두 좀더 솔직해지자.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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