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이가 제 방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로 걸어 나왔다. 순간 다른 아이를 찾아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이 아이가 샴 쌍둥이?" 전남의 작은 도시까지 내려오면서 내내 그려보았던 아이와 실제 지원이(가명·8·여)의 모습은 판이하게 달랐다.지혜·사랑이의 수술로 새삼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른 샴 쌍둥이. 그들의 경과를 지켜보는 세인의 시선에는 어쩔 수 없는 연민과 불안감이 담겨있다. "어떻게 저런 딱한 일이…." "앞으로 잘 자랄 수 있을까?" 하기야 의학적으로도 샴 쌍둥이는 '일란성 쌍둥이 배아가 불완전하게 분리돼 신체 일부가 결합된 상태로 태어난 기형'이라고 하니까.
하지만 지원이를 보면 이런 시선(혹은, 편견이라고도 할 수 있는)을 깨끗이 거둬 들이게 된다. 예쁜 윤곽에 쌍꺼풀 진 귀여운 얼굴, 요즘 아이들답게 날씬하게 빠진 팔·다리, 약간 마른 체형이지만 키도 또래의 평균치를 밑돌지 않는다. 방학식을 끝내고 와서 낮잠을 잔 뒤 피아노 학원에 간다며 가방을 챙겨 달려나가는 몸놀림이 새처럼 경쾌하다.
지원이를 보고서야 엄마 김주선(역시 가명이다·35)씨가 왜 그토록 만나길 꺼려 했는지 납득이 갔다. 아이는 굳이 '정상적'이라고 말할 것도 없었다. 스스로는 물론이거니와 주변 누구도 그 '특별한 출생'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이 기사에서 이름, 주소 따위의 디테일을 포기하는 건 그래서 지극히 마땅한 일이다)
사실 1990년 한양대병원의 첫 시술 이래 국내에서도 7건의 샴 쌍둥이 분리수술이 이뤄졌다. 그러나 95년 연세대병원에서 수술 받은 유리가 5년 이상 병원생활 끝에 숨지고, 자매 유정이는 하반신 마비 증세를 앓고 있다는 정도만 제외하고 아이들의 경과나 성장상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대부분 사망했거나 크고 작은 장애를 겪는 것으로 추정될 뿐. 그러니 지원이는 대단히 드문 성공사례다.
엄마 김씨는 결혼 1년이 넘어서야 아기를 가졌다. 본인도 원했고 시부모도 조급해 했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시도를 하진 않았다. 95년 기다리던 임신을 확인한 뒤 동네병원에서 주기적인 검진을 받았다. 일곱 달쯤 됐을 때였을까? 의사가 "쌍둥이를 가졌다"고 했다. 조금 놀랐지만 남편(34) 친척에도 쌍둥이가 있는 데다, 다른 임부에 비해 아랫배가 유난히 불렀던 터라 그럴 수 있으려니 했다. 그런데 의사가 머뭇거리며 한 마디를 더했다. "…아기 위치가 영 마음에 안 드네…."
순간 김씨는 가슴이 '쿵'하고 내려 앉더라고 했다. "임신부들은 기형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잖아요. 어디서도 그런 얘기가 나오면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지요. 그런데 그 얼마 전 샴 쌍둥이에 대한 TV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어요. 그래선지 느닷없이 그 생각이 머리를 스쳤어요."
의사의 권유로 인근 종합병원에서 재검을 받았으나 거기선 다른 얘기를 들었다. "쌍둥이는 맞는데 별 이상은 없습니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그 때 정확히 알았으면 아기를 포기했을 지도 몰라요." (나중에 가족은 그 병원을 고소할 생각까지 했다)
김씨의 불길한 느낌은 그해 가을 전남대병원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제왕절개 후 희미하게 마취에서 깨어 났을 때 누군가가 "아기 예쁘게 잘 받았다"고 의례적인 인사를 건넸다. 정말로 축하하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올려 다 본 남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아기의 상태를 알게 됐을 때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랴. "병상에 누워 그저 울기만 했어요.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수없이 되씹어 보면서요." 그러다 보니 별별 생각이 다 들더란다. "심지어 딸기를 먹을 때 과육이 쌍둥이처럼 붙은 걸 굳이 찾아 먹던 일까지도 마음에 걸리더라구요." 서울서 자라 결혼 후 처음 먼 지방에서 생활하면서 접한 낯선 이웃과 환경, 신혼 때 흔한 시댁 식구들과의 사소한 갈등, 때마침 남편의 실직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에도 괜한 혐의가 갔다. (김씨의 생각이 어떻든 샴 쌍둥이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두 여아는 가슴부터 배까지 붙어 나왔다. 몸도 극히 작아 한 아기는 고작 1.8㎏, 또 한 아기는 2㎏를 간신히 넘겼다. 무엇보다 둘은 한 개의 간(肝)을 공유하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산모의 충격을 우려해 아기를 보여주지도 않았다. "딱 한번 신생아실 창 밖으로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본 적이 있어요. 멀리 한 아이 얼굴만 언뜻 보였어요. 아마 죽은 아이였을 거에요. 걔가 더 컸거든요."
아기는 소아외과로 옮겨졌고 정상영(鄭湘泳·50) 박사가 분리수술을 맡았다. 출산 한 달여 만이었다. 원래 샴 쌍둥이는 웬만큼 성장한 뒤에 수술을 해야 성공확률이 높다는 게 정설. 그러나 정밀진단 결과 좀더 큰 아기의 심장에 복잡한 이상이 발견됐다. 게다가 심장상태가 시시각각 나빠지고 피부마저 푸른 빛을 띠어 더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정 박사팀은 꼬박 한나절이 걸린 수술로 몸통을 분리해냈다. 콩알만한 간은 반으로 갈라 각자의 배에 넣어 주었고, 둘이 붙어있던 부분의 피부는 주위를 당겨 봉합했다. 어쨌든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걱정했던 아기는 수술 18일만에 심장질환으로 결국 숨졌다. 아빠가 병원과 상의해 어딘가에 묻었다고 했다. "묻힌 곳을 저는 몰라요. 남편과는 일절 그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가슴이 너무 아프기 때문이지요.….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살아남은 아이를 잘 키우는데 온 힘을 쏟았어요." 김씨는 이 대목에서 또 눈물을 펑펑 쏟았다.
살아남은 지원이는 백일이 다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 안아 본 딸은 너무 작고 연약했어요. 개구리 인형 같았다고나 할까? 만지면 부서질 것 같았어요." 그 때부터 지원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한 엄마의 필사적인 노력이 시작됐다. 면역력이 저하된 아기는 늘 병을 몸에 달고 살았다. 감기에 중이염에…. 소화기능이 약해 음식도 제대로 못 받는 연약한 몸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독한 약이 들어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의 건강은 조금씩 나아졌지만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김씨는 잠 한번 편히 자본 기억이 없다. 한밤중 불현듯 깨어나 아이를 흔들어보고 숨소리를 확인하는 일은 일상이었다.
지원이는 3년 전 장기(臟器)의 위치를 제대로 잡아주는 대수술을 또 한차례 받았다. 분리된 좁은 복강에다 피부를 당겨 봉합한 탓에 장기가 눌려 탈장이 된 때문이었다. 그 뒤로 병원을 집처럼 들락거리는 일이 좀 뜸해졌다 싶었는데 이번엔 청천벽력 같은 사고가 일어났다. 김씨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20여m 높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진 것. 건강한 성인도 살기 힘든 그 사고에서 지원이는 한쪽 팔 다리만 부러진 채 기적적으로 회복됐다.
지금 지원이의 가슴에는 분리수술의 흔적만 한줄기 남아있을 뿐이다. 추락사고 때 산산히 부서졌던 팔 다리 관절 부위도 깨끗하게 아물어 제 기능을 되찾았다. 김씨는 지원이가 여전히 잔병치레가 많은 걸 걱정하지만 매년 아이를 체크하는 정 박사는 마음을 놓으라고 얘기한다. "잔병이 많은 건 샴 쌍둥이로 태어난 것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 또래의 좀 병약한 아이들과 마찬가지일 뿐입니다.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말이지요. 건강하게 잘 클 겁니다."
오히려 지원이는 남다른 머리와 재능을 타고 났다. 병원 오가는 일로 날을 지샜던 서너살 때 누구도 가르쳐줄 정신조차 없었던 한글을 혼자 깨쳤는가 하면, 가르쳐 본 피아노 선생님마다 놀라움을 감추지 않는다. 결석 않고 다니는 학교에서는 밝은 성격의 우등생으로 선생님과 친구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단다.
지원이 병원비와 남편의 오랜 실직(다행히 얼마 전 다시 직장을 잡았다)으로 인한 빚이 만만치 않지만 김씨는 주위에 도움을 청해본 적이 없다. 분리수술 사실 자체가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것도 김씨가 극구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널리 알려졌다면 요즘 지혜·사랑이처럼 독지가들의 지원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아이에게 자칫 무책임한 시선을 받게 할 수는 없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정신적인 상처만큼은 절대로 입지 않도록 키울 겁니다."
김씨는 요즘 지원이가 뭔가 특별한 사명을 받고 태어난 아이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 않고야 출생서부터 그토록 여러 차례 생명의 위기를 겪고도 잘 자랄 리 없다는 것. "사춘기를 넘기고 성인이 되면 그 땐 말해줄 참입니다. 네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배웅을 나와서도 김씨는 또 신신당부했다. "그 때까지는 절대로 남들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쓸 때 주변에서 아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지 꼭 신경 써 주세요." (그러니 이 기사에 혹 미진한 대목이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간곡한 모정 때문이다)
/편집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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