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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독재 인권유린 외부에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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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독재 인권유린 외부에 고발"

입력
2003.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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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의 인권유린 실상과 한국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어떻게 해서든지 외부세계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1970∼80년대 일본의 진보 월간지 '세카이'(世界)에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연재했던 얼굴없는 칼럼니스트 'T.K.생'은 당시 일본에 유학 중이던 지명관(79·사진) 한림대 석좌교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을 지 교수가 '세카이' 8월호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공개했다.

지 교수가 '한국 통신'을 쓰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정권이 72년 10월 유신헌법을 통과시키고 긴급조치를 남발하며 본격적인 철권통치에 돌입한 73년부터.

서울대 문리대 강사와 덕성여대 교수, 64∼66년 '사상계' 마지막 주간을 지낸 그는 한일수교회담 반대 투쟁을 벌인 뒤 72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유학생활 1년여만에 야스에 료스케(安江良介) 세카이 편집장의 권유를 받고 88년까지 15년간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기고했던 것. 야스에 편집장은 그의 필명 'T.K.생'을 직접 지어 주기까지 했다.

지 교수는 박형규 목사나 지금은 고인이 된 김관석 전 기독교교회협의회(NCC)총무 등이 일본에 올 때마다 전해준 국내 소식을 재료로 칼럼을 작성했다. 또 미국인 선교사와 언론인을 포함해 100여명의 국내 민주화 인사들이 작성한 메모지도 중요한 자료였다. 당시 한국 소식을 전달했던 인사들은 당국의 공항 검색을 피하기 위해 민주화 성명서 등의 문서를 담배에 말아온 적도 있다.

지 교수는 15년여 동안 작성한 칼럼 중 특히 한국의 언론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80년 7월호에 '어둠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그 해 5월 광주학살의 참상을 낱낱이 고발했던 글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물론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세카이지의 국내 반입은 'T.K.생'의 글을 모두 도려내야만 가능했다. 하지만 정권의 정보통제로 국내의 실상을 제대로 알 수 없었던 당시의 암흑 상황에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은 저항 지식인과 학생들에게 단비와 같은 정보소식지였다. 이런 이유로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 등 공안당국은 필자를 찾아내기 위해 집요하게 추적했지만 실패했다. 야스에씨가 지 교수의 원고를 받아 다시 옮겨 적은 뒤 곧바로 원본을 파기하는 등 철저히 보안했기 때문이다.

세카이측은 한국의 군사통치가 끝난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이제는 신분을 공개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요청했지만 지 교수는 '아직 때가 아니다'는 판단에 따라 거절했다고 한다.

/송두영기자 d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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