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바렌보임과 에드워드 사이드의 대화라…. 일단 눈에 확 들어온다.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바렌보임은 우리 시대 최고의 음악가 중 한 명이고, 동양을 보는 서구의 편견을 비판한 책 '오리엔탈리즘'의 저자로 유명한 사이드는 우리 시대 대표적 지성의 한 명이다. 게다가 바렌보임은 이스라엘 국적의 유대인이고,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출신이니 그들이 나눈 우정의 대화는 독자의 기대치를 높이는 데 부족함이 없다.이번 주 신간 '평행과 역설'(장영준 옮김, 생각의나무 발행)은 그런 이유로 단박에 눈에 띄었다. 그러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변했다. 서문에서부터 나타나는 오자의 행렬이 책 끝까지 이어지고, 맞춤법이나 인명 표기의 오류가 곳곳에 걸림돌처럼 박혀있다.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거나 수동형과 지시대명사, 생략해도 좋을 주어를 남발하는 번역투 문장의 어색함이 줄곧 신경을 건드린다. 두 사람이 나눈 음악과 사회에 대한 깊이있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성능 나쁜 스피커에 고문 당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디킨스/디킨즈',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발터/월터'로 표기가 계속 오락가락 하고, 이탈리아 테너 베냐미노 질리는 베냐미노 지글리로, 지휘자 푸르트뱅글러는 처음부터 끝까지 프루트뱅글러로 표기됐다. 꼼꼼한 교열을 거치지 않은 것이다.
너무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것 같은가. 천만에, 교열은 우리말의 최종 파수꾼이라고 믿는다. 전쟁의 상처로 휘청거리던 1950년대, 책이 드물던 그 시절 책 표지에는 지은이, 옮긴이 이름과 나란히 교열자 이름이 인쇄되곤 했다. '교열 이희승.' 당대 최고의 국어학자가 교열을 맡았던 것이다.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출판·인쇄 기술이 발달하고 출판물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교열에 쏟는 정성은 그때만 못한 것 같다. 요즘 편집자들은 책의 기획과 포장에 잔뜩 신경을 쓰지만, 꼼꼼하고 지루한, 그러나 책 만들기의 기본인 교열에는 그다지 열중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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