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메트로 라이프/ 고궁 청소년문화학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트로 라이프/ 고궁 청소년문화학교

입력
2003.07.26 00:00
0 0

장마의 끝자락 세찬 빗줄기로 말갛게 씻긴 23일 덕수궁에 아침 일찍부터 어린이와 부모들이 물기 머금은 궁 안 공기를 가르며 줄지어 들어섰다. 궁 입구에서 덕수궁 안내책자와 부채 하나씩을 받아 들고 학생들이 모여든 곳은 석조전(궁중유물전시관) 뒤켠의 임시강의실. 개량한복을 곱게 입은 선생님이 궤도를 펼쳐들고 백두대간, 한성을 둘러싼 백악·타락·목멱·인왕의 내사산(內四山)과 청계천, 한강으로 이야기를 꿰어가며 서울의 역사를 풀어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생까지 70여명의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아하"를 연발했고 엄마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에 열중했다.문화재청이 여름방학을 맞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설한 '고궁 청소년문화학교'가 덕수궁에서 여는 첫 수업이다.

21일 시작된 고궁 청소년문화학교는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종묘 등 5곳에서 내달 22일까지 5주간 문을 연다. 각 궁에서 요일별로 진행되는데 월요일은 경복궁, 화요일은 창덕궁, 수요일은 덕수궁, 목요일은 창경궁, 금요일은 종묘에서 오전9시30분에 시작해 낮12시30분까지 이어진다. 예약 없이 당일날 고궁에 오면 되고 수업료는 무료, 책자와 기념품도 받을 수 있다.

40여분의 재미난 강의를 마친 학생들은 7개 반으로 나뉘어져 '우리궁궐지킴이(www.palace.or.kr)' 자원봉사자들의 인솔하에 본격적인 덕수궁 탐사에 들어갔다.

대한문 앞에서 시작한 현장 답사. 궁궐지킴이 이현숙씨가 문 바로 앞에 서있는 비석을 가리키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모두 내리라는 하마비(下馬碑)'라며 임금님이 사시는 곳이니 예를 갖추라는 뜻"이라고 설명하자 아이들이 신기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금천교(禁川橋)를 건너며 "길이 세등분돼있죠. 가운데 한단 높은 길이 왕 만 다니는 길이예요. 여러분은 어떤 길로 가고싶어요"하고 이씨가 묻자, 아이들은 모두 가운데 길로 몰려들며 점잔을 뺀다. 중화문(中和門)에 도착해서는 단청이 예쁜 지붕으로 시선이 모아졌다. "처마에 걸쳐진 그물 보이죠. 새들이 앉지 못하게 하는 '부시'라는 거예요. 외우기 쉽죠"란 설명에 즉각 "부시 대통령이 만든거예요?"란 질문이 튀어나왔다.

임금이 신하들과 국정을 논하던 중화전(中和殿)에는 미리 온 다른 팀들로 주위가 가득 메워졌다. 건물 안 임금이 앉던 어좌, 일월오악도 병풍, 천장의 닫집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고, 이를 꼼꼼이 메모하던 백수현(양동중 1년)군은 "방학숙제 때문에 친구들과 나왔는데 지루하지도 않고 이런 저런 설명을 듣다 보니 꽤 재미있다"며 활짝 웃었다.

중화전 네 귀퉁이에 놓여진 솥단지 주위. "이건 '드므'라고 합니다. 이곳에 물을 가득 담아 놓으면 하늘에서 불귀신이 내려오다 물에 비친 자기의 흉측한 얼굴을 보고 놀라 도망간다고 하네요." 궁궐지킴이의 설명에 학생들은 하늘 한번 쳐다보고, 물에 자기 얼굴도 비쳐보며 키득거린다. 임진왜란 후에 모두 불타 돌아갈 궁궐이 없어 선조가 거처했다는 '석어당(昔御堂)', 고종이 머물다 갑자기 돌아가신 '함녕전(咸寧殿)' 앞에서 당시 어려웠던 과거를 듣자 어린 학생들 표정은 자못 진지해졌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데리고 나온 김형미(34·서대문구 연희동)씨는 "아이한테 도움될 것 같아 처음 나와봤는데 내게 더 유익했다"며 "요일 별로 열리는 다른 궁 강의도 빼놓지 않고 나가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덕수궁 탐사객들은 고종이 다과를 즐겼다는 궁궐안 첫 서양식 건물인 정관헌(靜觀軒)과 석조전 등을 둘러보고 궁 밖으로 나가 치욕적인 을사보호조약 체결의 현장 중명전(重明殿)을 찾는 것으로 답사를 마쳤다.

고궁 청소년문화학교가 개설된 지는 벌써 10년이 넘었다. 이전에는 문화재 전문위원이나 교수들이 맡아 학생들이 어려워했지만 재작년부터 우리궁궐지킴이가 활동하는 민간단체 '한국의 재발견'이 참여하면서 쉽고 재미있어졌다.

'한국의 재발견' 강임산 사무국장은 "궁궐지킴이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친구나 가족과 함께 600년 역사의 옛 향기를 만끽하는 것도 방학을 보람 있게 보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