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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해변의 카프카

입력
2003.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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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지음·김춘미 옮김 문학사상사 발행·상,하 각권 9000원'8년 만의 단비'. 일본에서 3권짜리 '태엽 감는 새'가 완간된 것이 1995년이니 새 장편을 기다렸던 하루키 애독자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900쪽에 달하는 작품이 단숨에 읽힐 만큼 단비는 세차고 시원하다.

소설의 크기와 깊이에서 뉴욕타임스가 '무라카미 예술의 대담한 진보'라 평했던 '태엽감는 새'에 견줄 만하다. 그러나 TV 광고를 통해 '상실의 시대'를 만난 독자라면 조금 실망할지 모르겠다. '상실의 시대'의 서정성보다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나 '양을 쫓는 모험' '태엽감는 새'의 실험성과 환상성으로 기운 때문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를 의식하고 몇 년간 준비한 야심작이었다고 밝힐 만큼 기법이나 문체, 시점에서도 다채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형식에 있어선 서로 다른 두 세계를 펼쳐놓았던 '세계의 끝…'의 방식을 취했다. 신비스러운 기운은 '태엽감는 새'와 비슷하다. '댄디'한 주인공의 영웅적 행보는 여전하다. 이번엔 15세 소년이다.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 중에서 가장 어리다. 가출 소년 카프카가 겪는 모험이 '해변의 카프카'의 큰 뼈대다. 데뷔 초기부터 찾아 헤맸던 '나를 위한 장소'('중국행 화물선')에 대한 탐색을 중학생의 시선으로 옮겼다. 여기에 고양이와 말을 나누는 정신지체 노인 나카타의 이야기를 겹쳐 놓았다.

잘 닦은 국도를 질주하는 느낌이다. 속도감과 주변 경관이 독자를 잡아끈다. 카프카가 가출한 뒤 아버지가 괴한에게 칼에 찔려 사망하는 전반부가 장관이다. 카프카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잘 것'이라는 아버지의 불길한 예언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애쓰지만 운명은 그럴수록 카프카의 팔을 낚아챈다. 한편 나카타는 고양이 사냥꾼을 살해하고 '입구의 돌'을 찾으러 다닌다. 두 사람은 '해변의 카프카'라는 노래가 만들어진 시코쿠 섬으로 마치 홀린 사람처럼 불려간다.

하루키는 희랍 비극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에 기대어 '상징적 부친살해'라는 통과의례를 그렸다. 15세 소년은 거센 '모래폭풍'을 거치면서 '내가 발 디딘 세계가 바로 내가 찾던 장소'임을 깨닫는다. 독자로 하여금 빈 곳을 메우게 하는 추리소설 형식이 가속 페달 역할을 하지만, 모든 것을 설명하고 넘어가려는 장광설과 노파심이 곳곳에서 읽힌다. 고양이 사냥꾼 조니 워커가 일찍 퇴장한 것도 아쉽다. 작가는 그를 수수께끼로 남겨 놓아 '악마적 부성(父性)'을 상징하려 했겠지만 말이다.

3인칭 시점을 도입하는 등 무라카미 소설의 변화가 눈에 띈다. 일본 문학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그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와 고대소설 '겐지(源氏) 이야기'에서 각각 방황과 '생령'(살아있는 인간의 유령)이라는 주요 에피소드를 끌어온 대목도 이채롭다. 정보사회를 비판했던 '세계의 끝'과 일본현대사의 폭력성을 폭로한 '태엽감는 새'의 너비 대신 하루키는 상처와 회복이라는 인간 내면 문제에 시추봉을 깊게 내렸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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