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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추운 공포영화 동호회 호러익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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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추운 공포영화 동호회 호러익스프레스

입력
2003.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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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추워요."19일 서울 홍대 앞 카페에서는 국내 최대이자 세계적으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규모의 공포영화 동호회 '호러익스프레스'(horrorexpress.co.kr)의 공포 축제가 열렸다. 다달이 갖는 모임인 공포축제는 여름이면 무더위 식히기의 장이 된다. 지금까지는 등골이 서늘한 공포영화 이야기로 더위를 쫓았지만 8월부터는 밤 11시부터 이튿날 새벽 6시까지 밤을 새우며 공포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를 개최해 본격적으로 더위 사냥에 나설 계획이다.

총 4편의 상영작 가운데 현재 결정된 1편은 일본의 비디오용으로 나온 공포물 '주온'.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하므로 온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주온'의 공포를 실감하고 싶다면 홈페이지를 참조해 찾아가면 된다.

공포 총집합

1998년 '호러존'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호러익스프레스는 전세계 공포영화 정보를 모두 모아 놓았다. 국내외 최신 공포영화 동향은 물론이고 제작중인 영화 소식부터 출시 DVD 리뷰, 영화평론가 수준의 전문 칼럼까지 게재하고 있다.

호러존 시절에는 공포 영화를 사랑하는 회원이 수만 명에 이르러 전주, 부산, 대구 등에 지부를 둘 정도였다. 덕분에 국제적으로도 이름을 떨쳐 해외 유명 공포영화 사이트로부터 관련 내용을 함께 싣자는 제휴 신청이 쇄도했다.

그러나 2001년 호러존의 유명세를 탐낸 사람이 인터넷주소(도메인)를 가로채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름을 호러익스프레스로 바꿔야 했다. 그 뒤 회원이 2,500명 정도로 줄었지만 골수 회원들이 그대로 옮겨와 명실 공히 국내 최대의 공포영화 사이트로서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공포 전도사들

호러익스프레스의 기둥은 호러존의 창시자인 김종철(31) 회장. 공포영화를 만들기 위해 사전 정보수집 목적으로 만든 사이트가 동호회로 발전했다. 김 회장은 4살 때 처음 본 영화인 공포물 '캐리'에 충격을 받아 공포영화 팬이 됐다. 27년 동안 본 공포영화만 무려 4,000여편. 소유하고 있는 공포물도 비디오 3,500편, DVD 400편 등 약 4,000편에 이른다.

호러동호회가 빛나는 이유는 하나같이 이력이 독특한 7명의 필진들이 전문지식을 뽐내는 글을 게재하기 때문이다. 해외공포물 소식을 전하는 양광모(33)씨는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국제변호사로 호러익스프레스의 법률고문을 맡고 있다. DVD제작사에 근무하는 한창남(27)씨는 일본 공포영화 전문가, 서울예술대학에서 연출을 전공한 김성호(28)씨는 국내최초의 공포영화 전문 PC통신 동호회인 하이텔 '호러천국'의 초기멤버 출신이다.

시나리오 작가인 김지환(36)씨와 영화전문지 기자출신인 박건일(28)씨도 공포영화 리뷰를 맡고 있으며 대중문화평론가 강명석씨는 해외 공포영화제 소식을 전담하고 있다. 공상과학소설(SF) 작가인 듀나는 아무도 얼굴을 본 사람이 없는 정체불명의 필진. 실제 본명은 물론이고 한 명인지 복수의 작가그룹인지도 불분명하다. 철저하게 자신의 성별, 이름, 나이를 숨긴 채 집필 활동을 하고 있어 호러익스프레스 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밖에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받은 베스트셀러 만화인 '프리스트'의 작가 형민우씨와 국내최고로 추앙받는 공포소설 작가 이정호씨 등이 이색회원으로 꼽힌다. 이씨의 경우 미발표작 '모녀기'를 안병기 감독이 '분신사마'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고 있어 유명해졌다.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들이 공포영화에 몰두하는 이유는 공포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는 많이 볼수록 면역이 생기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무서워져요. 1,000편 이상 보면 영화에 몰두하게 됩니다. 악몽도 꾸게 되죠. 그렇지만 영화 속의 끔찍한 상황을 보고 나면 현재 건강하게 살아있는 자신의 모습에 안도하게 되고 더욱 열심히 살려는 의지가 생깁니다." 김 회장의 공포영화 예찬론이다.

보통 사람들은 공포영화를 무조건 '무서운 영화' 하나로만 보지만 마니아들은 분야를 나눈다. 연쇄살인 등 잔인한 살인마가 등장하는 슬래셔물, 극단적 신체훼손과 피가 강처럼 넘쳐 흐르는 고어물, 흡혈귀가 주인공인 뱀파이어물, 초현실적 존재가 등장하는 고스트물, 잔혹 영상과 웃긴 내용이 결합된 스플래터 등으로 구분한다. 분야별로 특수효과, 감독의 촬영기법, 연기 등 눈여겨 보는 부분도 다르다.

이 땅에서 공포영화를 취미로 즐기기란 결코 쉽지 않다. 기준이 높은 검열 때문에 무삭제 영화를 보기 힘들 뿐더러 심지어 아예 국내 유입이 안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렇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호러익스프레스 회원들은 주로 아마존 등 해외의 DVD취급 쇼핑몰을 이용해 섬뜩한 공포영화 DVD를 직접 공수해 본다.

검열의 잣대는 곧잘 사회 통념으로 이어진다. "공포 영화를 좋아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는 편견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액션, 뮤지컬, 코미디처럼 공포도 하나의 장르에 불과해요. 공포물을 좋아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보는 시각은 부담스럽습니다." 공포영화 팬들을 대신해 어려움을 털어놓은 김 회장은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진짜 무서운 게 뭔 줄 아세요? 영화 '타이타닉'을 보고 감동하는 사람들이에요. 배가 두 동강 나 수많은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보면 소름이 끼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고 찬사를 보내지요. 현실을 영화처럼 가볍게 여기고 영화를 현실처럼 침소봉대하는 사람들이 제일 무섭습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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