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국민은행장이 작년말 선발한 신입행원 77명에게 전원 경영학석사(MBA) 연수 혜택을 주겠다고 공언했을 때 금융계에선 걱정스러운 시선이 많았다. 근무 4년이 지나면 국내외 MBA학비와 체제비 일체를 은행이 부담해주는 파격적인 혜택은 국내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를 두고 은행권에선 "4년 후면 김 행장이 임기를 마친 다음인데, 그 엄청난 비용(1인당 연간 7,000만∼1억원)을 후임 행장에게 다 떠넘겨도 되느냐", "은행 실적 악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씀씀이가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불과 몇 개월만인 지난 23일 김 행장은 기업설명회에서 "경비 절감이 시급한 상황"이라며 "연내 120개 정도의 점포를 없애고, 노조와 대화를 거쳐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1,260개 점포 중 10%나 폐쇄하면 인력도 최소한 700∼800명이 감원될 전망이다.
파격적인 'MBA 잔치'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온 김 행장의 고강도 구조조정 방침은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점포 폐쇄와 인력감축 없이도 합병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던 김 행장 스스로의 논리와도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국민은행 측은 국내 경기의 급격한 침체 등 예상치 못한 경영환경 변화를 이유로 들고 있다. 김 행장의 지인은 "병치레 후 김 행장의 경영관이 많이 바뀐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 앞도 못 내다본 채 냉·온탕을 오가고, 경영난에 가장 손쉬운 경비절감으로 대응하는 것은 구멍가게 사장의 경영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경영자(CEO)인 김 행장에게 국민들이 기대하는 것은 튀는 발언이나 돌출 행동이 아니라 앞서가는 경영안목, 남다른 경영비전이라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남대희 경제부 기자 dh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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