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운과 사회]<12> 성격과 체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운과 사회]<12> 성격과 체질

입력
2003.07.24 00:00
0 0

성격은 사회적 행·불행의 큰 요인사람들은 제각기 고유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온화하고 쾌활한 사람이 있고, 차갑고 우울해지기 쉬운 사람도 있다. 성급하고 직선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침착하고 은근한 사람이 있고, 자존심과 소유욕이 강한 사람도 있고 비겁하고 관대한 사람도 있다. 또한 원대한 꿈을 품은 이상주의자와 지극히 실용적인 현실주의자가 있고, 대충대충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있으면 섬세하고 치밀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사회적 성패와 개인적 행·불행의 원인을 분석해 보면 성격 요인이 의외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예가 많다. 일례로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성급한 성격 때문에 판단을 그르쳐 실패를 하고, 어떤 사람은 너무 신중한 성격 때문에 오히려 크게 성공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거듭되는 실패가 자신의 성격 탓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쉽사리 성격을 고치지 못한다. 성격이 대체로 유전과 어렸을 때의 경험을 통해 형성·고착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물학적 유전과 어릴 때의 경험이 개인의 성격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라면, 성격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성공 혹은 실패에는 운의 간지(奸智)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성격은 주로 운에 의해 결정되지만 개인의 성공과 실패, 행·불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더욱이 지도자의 성격은 국가 전체의 흥망성쇠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흥미 있는 사회철학적 쟁점이 될 만하다. 실제로 최근 개인의 성격과 성공의 상관관계를 다룬 책이나 통치자의 성격과 국가 운명을 연관시켜 분석한 책들이 나오고 있다.

햄릿과 돈키호테

시야를 조금 넓히면 17세기 초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당시의 셰익스피어는 이미 '햄릿'과 같은 우유부단한 성격형이 어떻게 비극을 낳는지를 극적으로 부각했고, 비슷한 시기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 역시 '돈키호테'라는 광기 어린 '정의의 기사'를 창조해 개인의 성격이 사회개혁의 힘으로 표출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보다 친숙한 예로는 지난해 방영된 TV드라마 '태양인 이제마'가 있다. 사상의학의 창시자인 이제마는 조선시대 말기의 한의학자로 임상경험과 실험정신을 결합시켜 인간의 체질에 대한 독창적 가설을 수립한 인물이다. 비록 신체적 약점 때문에 무관이 되고자 한 개인적 열망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독창적이고 비타협적 태양인의 성격을 지닌 덕분에 끈질긴 노력 끝에 한의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이란 명저를 남길 수 있었다.

사상의학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선천적인 오장육부의 허실(虛實)과 성정(性情)의 차이에 따라 태양인(太陽人), 태음인(太陰人), 소양인(少陽人), 소음인(少陰人)의 4가지 체질 중 하나에 속하며 체질에 고유한 용모와 체격 그리고 성격 및 생리적 특징을 드러낸다고 한다.

예를 들어 태양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간 기능이 튼튼하고 폐와 심장 기능이 약한 신체적 특징과 아울러 강한 자존심과 명석한 두뇌, 그리고 비타협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반면 태음인은 폐기능이 튼튼하고 간기능이 약한 신체적 특징과 함께 큰 포부와 치밀한 계획성, 그리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성격적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

궁예와 왕건

흔히 궁예와 왕건은 각각 태양인과 태음인을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로 거론된다. 궁예는 신라 왕실의 서자 출생으로 진취적이고 영웅적이며 자존심이 강한 태양인 기질을 지니고 태어났다. 후고구려의 지도자로 부상해서 황제가 되기까지의 그의 삶은 태양인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 유감 없이 발휘되었다.

하지만 일단 황제에 오르자 태양인의 독선적이고 비타협적 성격이 돌출, 자신이 정의의 화신인양 '관심법(觀心法)'과 '법봉(法棒)'을 사용해 반대자들을 잔인하게 처형하는 광기를 드러냈다. 궁예의 생애는 정치지도자의 개인적 성격이 어떤 개인적·정치적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경우다.

궁예와 달리 태음인으로 추정되는 왕건은 매우 침착하고 속이 깊으며 끈기와 인내심을 지닌 현실주의적 인물이었다. 그러면서도 고집이 있고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음흉한 면도 갖고 있었다. 그는 태양인이 선호하는 법적 정의의 실현에 못지 않게 온후한 덕을 보임으로써 훌륭하고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많이 모을 수 있었고, 그 덕에 자신의 성격적 결함을 보완해 고려의 태조가 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체질이 인간의 용모와 성격을 좌우하고 사회생활의 성패와 행·불행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면, 사상의학은 결국 체질로 나타난 운의 작용을 어떻게 풀이하고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이 타고난 체질을 잘 이해하고 그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면 건강과 성공과 행복을 누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병약하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깨달음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체질과 성격이 인간의 건강이나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은 서양에서도 뿌리 깊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의사 갈레노스는 이미 생리학적 지식을 활용해 기질(Temperament)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설명했다.

그는 피, 점액, 황담즙, 흑담즙의 4가지 체액이 몸을 이루는 기본이라 생각했으며 이 가운데 어느 체액이 우세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성격을 다혈질(온화하고 쾌활함), 점액질(느리고 냉담함), 우울질(우울하고 상심하기 쉬움), 담즙질(기민하고 급함) 등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보았다.

20세기의 독일 정신과 의사 에른스트 크레치머 또한 인간의 체형을 허약형, 운동가형, 비만형의 3가지로 분류하고 그에 일치하는 심리적 특성을 바탕으로 성격분류표를 만든 바 있다. 그리고 성격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행복해지기 쉬운 성격과 그렇지 못한 성격이 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모든 성격은 장·단점 있어, 주변 도움이 중요

이런 점에서 성격은 인격화한 운이라 부를 만하다. 특정한 상황에서 긍정적인 힘으로, 또는 부정적인 힘으로 작용해 개인을 성공이나 파국적 상태로 몰아 가는 인격에 내재된 힘이기 때문이다. 성격은 어떤 상황에서는 성공을 향한 추진력으로 작용하지만 일단 성공에 이르게 되면 몰락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궁예의 경우가 전형적인 예이다.

성격이 어떤 방향으로 발현될 것인가는 상황에 달려 있다. 그 때문에 일단 성공한 인물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성공을 누릴 것이란 보장은 없다. 성격이 표출되는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모든 성격형은 장점과 함께 단점도 지니고 있다. 때문에 다른 성격을 지닌 주변 사람들의 도움은 대단히 중요하다. 자신의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좋은 참모, 부하, 상관, 파트너, 친구, 배우자를 얻는 것은 자신의 성공을 지속시키고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최상의 방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훌륭한 사람을 곁에 둘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결국 행운의 결과이고 보면, 인간사에 대한 운의 개입은 끝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성격에 내재하는 운의 요소를 긍정적인 힘으로 유도하기 위한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성격이 우선은 유전에 의해 바탕이 결정되긴 하지만, 가족적·사회적 배경 또한 성격 형성에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개인의 성격이 형성되는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원만하고 훌륭한 성격 형성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무질서하고 빈곤한 사회보다 정의롭고 풍요로운 사회가 사회 구성원의 바람직한 성격 형성에 훨씬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김 비 환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