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여고괴담'이 호러 영화인데도 폭발적 인기를 끈 것은 누구에게나 친근한 학교라는 공간을 공포가 엄습하는 폐쇄 공간으로, 소녀를 공포의 생산자와 소비자로 인식시킨 때문이다. '여고괴담'은 그래서 우리 문화의 하나의 아이콘이 됐고, 이후 우리나라 학교 공포물의 원전이 됐다. 그래서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여우계단'(감독 윤재연)의 주인공 박한별(19), 송지효(22)는 흥행이나 비평에서의 성공과는 별개로 이미 행운아다.
대체 누굴 닮은 거니?
"스크린쿼터 결의 대회에 나갔더니 박중훈 선배님이 절 반갑게 맞으며 인사를 하는 거예요. '그래, 지현아' 하고요. 어찌나 민망하던지."
박한별이 가장 꺼려 하는 말은 "전지현이랑 진짜 닮았다"는 것. 일반인은 물론이고 어떤 행사에서는 사회를 보던 아나운서조차 "전지현씨 오셨네요"라고 소개를 했다. 죽을 맛이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앞 자리에 앉은 전지현씨를 한 번 봤는데 전 닮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더욱이 제 노력으로 뭔가를 이루어도 '전지현 닮아 성공했다'는 말을 들으면 억울할 것 같아요."
박한별이 '제 2의 전지현'으로 겪게 된 억울한 사연을 줄줄이 얘기하자 영화를 찍으며 친해진 송지효도 '사연'을 얘기한다. "지면 모델 활동을 할 때 누가 와서 사인을 해달래요. '저 TTL…' 하면서. 매니저 언니는 해주라고 그러고. 제가 물었죠. '저 임은경인 줄 아시는 거죠?' 역시 실망한 표정이더라구요." 송지효는 임은경을 닮았다는 얘기에 가끔 상처를 받는다.
누가 소희, 누가 진성?
감독은 박한별, 송지효 둘을 뽑아두고 소희와 진성 두 캐릭터 중에 맞는 것을 각자 고르라고 했다. 예고의 발레 전공생인 소희는 '얼짱'(얼굴짱)에 무용 재주도 탁월한 '모차르트'형 여고생. 소희의 단짝 진성은 마음 속에 은밀히 소희에 대한 열등감을 키우고 있는 '만년 2등생'.
두 사람은 한 달 가량 영화사에서 시나리오를 읽고 연습을 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배역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리틀엔젤스 출신으로 선화예고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안양예고로 전학해 연기를 전공하는 등 "점쟁이 아줌마 말대로 연예 방면으로 나가야 한다"고 믿어온 박한별. 예고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그는 "아무래도 소희가 쉽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슷한 시기 송지효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중성적 매력이 있는 동시에 절친한 친구에게 경쟁심을 느끼는 2등 역할이 자기 것이란 판단이 섰다.
내가 아직 친구로 보이니?
앞서 두 편의 영화가 학교라는 시스템이 가진 폭력성을 공포의 먹이로 삼았다면 '여우계단'은 또래 소녀의 질투심이 화두다. "예고 다닐 때 무용하는 아이들 사이의 경쟁이 장난이 아니었어요. 특히 발레 전공생들은 친하면서도 속으론 너무나 경쟁심이 강했어요."(박한별), "누구든 경쟁심이나 열등감을 느껴본 적이 있겠죠. 하지만 일일이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송지효)
박한별이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송지효는 꽤나 어른스럽다.
"학교는 무서운 곳이에요. 몇 년 동안 계속 다니지만 밤이 되면 아무도 없고, 게다가 너무 크고…. 공포 자체죠."(송지효) "처음엔 영화 촬영장도 분위기가 너무 무서웠어요. 나중엔 오히려 그 분위기를 즐겼지만요."(박한별)
여우야, 여우야, 소원을 들어줘
"빨리 어른이 되어 결혼하고 싶었어요."(송지효) "살 빠지게 해달라고 빌었죠."(박한별)
고등학교 때 두 사람의 소원은 이랬다. 물론 졸업한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송지효는 특히 고생이 많았다. 촬영 직전 연습하다가 발목을 다치더니 침대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찍다가 갈비뼈에 금이 갔고, 마지막 촬영에서는 카메라 이동차에 발이 깔렸다. 부상 열전. 욕하는 장면에서는 열일곱 번이나 다시 촬영을 했다. 그래도 포부는 다부지다. " '약속'의 전도연, '여우계단'의 혜주 역 이런 거 다 해보고 싶어요."
'얼짱' 박한별은 그냥 짧고 굵게 "다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무엇을 하든 '전지현 닮아 덕 봤다'는 얘기 대신 '박한별답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에필로그/인터넷판 '여고괴담'
요즘 인터넷에서 유행 중인 '여고괴담' 플래시 애니메이션의 줄거리. 입시 중압에 시달리는 고교생들의 심리를 비틀었다.
<한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했으나 늘 2등만 하던 아이였다. 어느날 한 노파가 말했다. "1등이 하고 싶니?" "그렇다면 네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을 가져와" 1등이 싶어 제 정신이 아니었던 남자 친구를 독살한 후 꺼내 노파를 찾아 갔다. "이, 이제 가르쳐 주세요." 노파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짓더니 이렇게 "국·영·수 중심으로 예습 복습 철저히.">한>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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