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오늘]<859>틸라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늘]<859>틸라크

입력
2003.07.23 00:00
0 0

1856년 7월23일 인도의 사회운동가 발 간가다르 틸라크가 라트나기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몰(沒). 틸라크는 13세 아래의 모한다스 간디에 앞서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인도 민족운동을 이끈 사람이다. 그는 인도국민회의의 진보적 민족주의파 우두머리로서 20세기 들어 '스와라지'와 '스와데시'라는 민족운동 이념을 제창했다. 힌디어로 스와라지는 '자치' 또는 '독립'을 뜻하고 스와데시는 '모국'을 뜻한다. 영국 제품의 불매와 국산품 애용을 실천적 내용으로 한 스와데시는 스와라지라는 총노선의 경제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스와라지와 스와데시는 인도 총독 조지 너새니얼 커즌의 벵골 분할령에 맞서 제기되었다. 커즌은 1905년 7월 반영(反英) 분위기가 짙은 벵골을 힌두교도가 많은 본주(本州)와 이슬람교도가 많은 동(東)벵골의 아삼주(州)로 분할함으로써 인도 사람들의 민족적 분열을 꾀했다. 국민회의가 이듬해 틸라크의 지도 아래 스와라지와 스와데시를 결의하고 그 뒤 저항의 고삐를 늦추지 않자 영국은 1911년 이를 철폐했지만, 이 벵골 분할은 영국이 인도 아대륙(亞大陸)에서 물러간 뒤인 1947년 파키스탄이 인도에서 떨어져나가는 한 원인이 되었다.

틸라크가 간디나 네루와 달랐던 점은 민족운동의 중심에 노동운동을 놓았다는 데 있다. 틸라크가 1908년 소요죄로 6년형을 선고 받자 뭄바이의 면직물 공장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으로 이 민족 지도자에 대한 경의와 연대를 표시한 일도 있거니와, 노동운동에 대한 틸라크의 경도는 러시아 10월 혁명의 성공에 고무된 만년 들어 특히 두드러졌다. 틸라크는 라지파트 라이 등과 함께 전국적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1920년 전(全)인도노동조합회의(AITUC)가 출범되기 직전인 8월1일 작고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