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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비화- 대통령의 사람들]<21>게이트의 사슬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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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비화- 대통령의 사람들]<21>게이트의 사슬 ④

입력
2003.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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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던 2002년 6월, 대검 중수부는 홍업씨와 힘겨운 줄다리기를 벌였다. 홍업씨 집과 계좌에서 수십억원의 비자금을 발견했지만 그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대부분 현금이나 헌 수표여서 출처를 밝히기도 힘든 상황이었다.헌 수표 몇 장이 현대백화점을 거쳐 나온 것이라는 실낱 같은 단서를 찾아낸 수사팀은 "현대에서 받은 돈 아니냐. 수표 추적이 다 됐다"며 홍업씨를 추궁했다. '넘겨짚기'였지만 자백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홍업씨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정주영 회장에게서 16억원을 받았다."

기세가 오른 수사팀은 "현대만 줄 리가 있나. 삼성 대우 LG SK 애경 등 다른 곳에서도 주지 않았느냐"고 몰아붙였다. 홍업씨는 펄쩍 뛰면서 "현대와 삼성 밖에 없다. 삼성은 5억원이다"라고 내뱉었다. 홍업씨 비자금의 출처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홍업씨의 변호인 유제인 변호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왜 자백했느냐고 물었더니 '검찰이 알고 묻는 것 같은데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말하더라. 수사가 석달간 이어지면서 자포자기한 측면도 있었다. 홍업씨는 검찰쪽에 '자진출두하겠다. 조사 좀 받게 해 달라'고 간청했을 정도로 지쳐있었다."

그러나 이는 비자금의 일부였을 뿐 여전히 수사는 '산너머 산'이었다. 초조해진 검찰은 '여자문제'까지 건드렸다. 홍업씨 측근 A씨의 증언. "검찰은 유흥업소 출입이나 여성편력을 모두 들춰내며 전방위 압박을 가했다. 약점을 잡아 자백을 받아내겠다는 의도였다." 결국 김성환·유진걸·이거성씨 등 홍업씨의 측근 3인방이 입을 열면서 신승남 검찰총장과 안정남 국세청장, 이형택 예금보험공사 전무 등 권력실세에 대한 청탁과 그 대가로 받은 25억원이 드러났다.

검찰수사를 통해 밝혀진 '홍업씨의 힘'은 검찰과 국세청 등은 물론이고 권노갑 고문과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 한화갑 의원 등에게도 미칠 정도로 막대했다. 정치권 인사 B씨의 증언. "홍업씨의 말 한마디에 권력실세들이 움직였다. 아버지를 무서워 한 홍업씨는 혼날까 봐 DJ에게 직접 말하지 못했다. 대신 다른 실세들을 통해 일을 처리했다."

또 대검 수사팀 C검사의 말. "홍업씨와 아태재단의 힘은 막강했다. 안 국세청장은 홍업씨 부탁이면 '어이구 그러시냐'며 나섰다. 홍업씨를 자신의 보호막으로 여겼다. 신 검찰총장에 대해서는 김성환이 다리를 놓고 전령역할을 했다. 홍업씨는 김성환이 마련한 신 총장 취임 축하연에도 참석하는 등 3,4차례 만났다."

물론 현대와 삼성 등 대기업도 홍업씨를 'DJ정권의 핫라인'으로 여긴 것 같다. 수사를 맡았던 D검사의 말을 들어보자. "정주영 회장과 정몽헌 회장,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 등은 '앞으로 우리 그룹을 잘 봐달라'는 의미로 거액을 전달했다. DJ정권에 대한 '보험금'이자 '창구 개설비'였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청탁을 했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 공무원과는 달리 민간인인 홍업씨에게 뇌물죄를 적용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홍업씨의 측근 E씨는 "청탁의 대가였다면 액수가 최소 50억원은 될 것이며 심부름꾼인 김성환도 개입했을 것이다. 홍업씨와 예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정주영 회장과 이학수 본부장은 '대통령 아들이 여기저기서 지저분하게 돈 받으면 보기 안좋다'는 취지로 돈을 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홍업씨와 그가 부이사장으로 있던 아태재단측이 받은 돈의 규모나 성격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뒷말이 무성하다. 10대 재벌의 한 관계자는 "이수동씨 등 아태재단측이 운영비 명목으로 수억원을 요구해 제공한 적이 있다"며 "보험금조로 알아서 주기도 하지만 먼저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C검사도 "다른 재벌에서도 돈이 간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물증을 찾지 못했을 뿐"이라고 회고했다.

검찰수사에서 역대 국정원장도 홍업씨의 후원자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임동원 원장은 홍업씨에게 철마다 수백∼1,000만원씩의 떡값을 줬고 신건 원장은 변호사 시절부터 1,000만∼2,000만원씩 용돈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C검사의 말. "명절 떡값으로 줬다지만 개인 돈인지 원장 판공비인지 구별하기 힘들었다. 원장 판공비 내역은 1급기밀이니 함부로 뒤질 수도 없었다. 당사자들쪽에서는 '대통령 아들이 비리를 저지르지 않도록 예방하는 차원에서 용돈을 준 것'이라고도 했다."

홍업씨는 자신의 비자금을 바탕으로 총선에도 관여했다는 말도 있다. 홍업씨의 한 측근은 "아태재단 운영비 외에 총선에도 돈을 썼다. 대통령의 아들로서 재단 명의로 선거 관련 여론조사를 자주 실시했고 50개 지역구만 해도 어림잡아 20억여원은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의 설명은 다르다. "홍업씨는 측근들과 고급 룸살롱을 다니며 수천만원씩을 뿌렸다. 돈을 집 베란다에 쌓아놓고 1년 이상 지나야 사용했다. 아태재단이나 정치판으로 들어간 돈은 거의 없었다. 측근 3인방 주머니로 상당액이 새나갔다."

이상하게도 청와대는 홍업씨와 재벌간의 금품수수 관계를 눈치채지 못했다. 3남 홍걸씨에 대해서는 수시로 정보보고를 올렸던 국정원 등 사정기관도 홍업씨에 대해서는 '노터치'였다. 아들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DJ는 후일 수십억원의 비자금이 드러나자 충격과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홍업씨가 구속되던 날에는 "내가 대통령이 된 게 죄"라고 자책했다고 한다.

홍업씨 주변에는 항상 이권청탁자들이 넘쳐 흘렀다. 대통령이 된 DJ가 과거의 '후원자'에게 문을 닫아 건 탓도 있다. '홍업씨를 통하면 안되는 게 없다'는 말이 파다했다. 측근 3인방은 청탁자들을 교통정리하는 역할을 했고 자연히 부정한 돈이 흘러들었다. DJ의 비서관 김한정씨의 말을 들어보자.

"홍업씨는 1970년대부터 DJ의 비서역할을 했다. 지지자들은 IMF 이후 자식 취직 부탁이라도 하려고 청와대 대신 아태재단으로 갔다. 청탁자가 끝없이 밀려들자 홍업씨는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이민이라도 떠나고 싶다'고 괴로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차비라도 쥐어주며 다독여야 하는 게 홍업씨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아태재단에 그럴 만한 돈이 없었다. 청와대측은 5년동안 아태재단에 단돈 1만원도 지원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김 비서관의 말. "아태재단을 너무 방치한 게 실수였다. 아예 문을 닫든가, 공식적으로 재원을 마련해줬어야 하는데 미처 못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 "DJ정권 집사" 이수동의 무소불위 잘나가던 檢실세도 "형님"

2002년 5월 대검 중수부 11층의 특별조사실. 이용호 G& G구조조정(주) 회장으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수동 아태재단 이사가 교도관에게 뜬금 없는 질문을 던졌다. "저기 저 유리창 깨집니까?"

몇달간 이어진 수사에서 갖은 수모를 당한 그의 얼굴엔 체념과 절망의 빛이 가득했다. 깜짝 놀란 교도관이 "방탄유리라 절대 안깨진다"고 한 뒤 즉각 상부에 보고,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투신을 생각할 만큼 초라한 신세로 전락했지만 6개월 전만 해도 그의 힘은 대단했다.

일부 호남 출신 검사들은 그를 '형님'으로 모셨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 대한 검찰수사 상황을 환히 꿰뚫고 있었다. 측근 도승희씨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한 2001년 11월 초 김대웅 서울지검장은 "이용호 사건에 형님 이름이 자꾸 오르내리는데 괜찮느냐"고 전화를 걸었다. 김 검사장은 "황낙주 국회의장을 잡아먹은 도씨 같은 사람과 왜 가까이 지내느냐. 이번에 미국 가시면 혹시 안 들어오는 것 아니냐"라며 암시 섞인 말을 던졌다. 이수동씨는 수사팀이 신승남 검찰총장에게 자신과 도씨에 대한 조사 필요성을 건의한 직후 이 사실을 알았다. 신 총장과 김 검사장은 수사기밀 누설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지만 이수동씨와 수시로 통화한 사실은 확실했다.

안정남 국세청장도 '이수동의 사람'이었다. 이수동씨는 국세청장 인사내용를 파악해 안 청장에게 미리 알려주고 축하의 난(蘭)까지 보냈다. 안 청장도 이씨의 청탁이라면 발벗고 나섰다. 이수용 해군 참모총장을 필두로 군과 경찰, 국세청 등 정부기관의 인사청탁이 그에게 쏟아졌고 국정쇄신 및 언론개혁 문건까지 전달됐다.

그는 대통령 집무실에도 수시로 드나들면서 언제든 DJ를 만날 수 있는, 몇 안되는 측근이었다. 방미 때도 대통령 전용기의 DJ 뒷좌석에 앉을 정도로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 C씨. "그는 잔머리를 쓰지 않고 DJ에게 충직했다. 그가 부탁하면 누구도 함부로 흘려들을 수 없었다. 홍업씨와는 다른 실세였다. 하지만 DJ에 누가 될까 청와대쪽에는 부탁을 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배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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