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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커스]"골목안 풍경" 사진작가 김기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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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커스]"골목안 풍경" 사진작가 김기찬씨

입력
2003.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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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66)씨는 골목을 찍는 사진작가이다. 첫번째 사진집 '골목안 풍경'(1988년) 1집 이래 올봄에 나온 제6집까지 그는 골목이라는 주제 아래 1966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의 서민촌 풍경을 세밀하게 기록해왔다. 그의 사진집에는 조그만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산동네 풍광과 더불어 좁은 계단으로 이어지는 골목길, 거기서 줄넘기하고 숨바꼭질하고 만화책을 빌려보는 아이들, 우물가서 물긷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토란을 까는 아주머니들, 계단참에 앉아 수다떠는 할머니들과 같은, 이웃끼리 어깨를 부대끼며 정겹게 살아온 시간이 그대로 담겨 있다.그를 찍기 위해 서울 중구 중림동의 골목길을 찾은 날. 거리에서는 수박추렴이 한창이었다. 할머니 열 명이 수박 한 통을 함께 먹고 있었는데 김씨가 다가서자 그 중 한 할머니가 얼굴을 알아봤다. 그리고 그 자리에 김씨는 금방 어울려 들어갔다. 그러나 이 골목은 이미 아파트촌이 포위해 들어왔고 담벼락에 붙어 있는 '중림10지구 도심재개발'로 시작되는 공고문은 이 골목도 조만간 사라질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곳이 아파트촌이 되면 할머니들은 어디서 수박추렴을 할까.

―왜 하필 골목인가.

"64년에 동양방송의 영화제작부에 입사했는데 화투도 못하고 당구도 못해서 취미를 하나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부장이 사진전문가라서 학생들이 많이 찾아왔다. 나도 사진을 찍으면 직업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2년만에 중고카메라를 하나 장만해서 시작했다. 회사일이 바쁘다보니 일부러 사진 찍을 시간을 내긴 힘들어서 홍제동 집에서 동양방송이 있는 순화동까지 걸어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 사이에 서울역과 염천교가 있는데 행상들이 많았다. 김밥 돼지껍데기 시루떡 냉차 장사들이 줄을 서있고 수산시장도 노량진으로 옮겨가기 전에는 거기 있었다. 또 고속버스도 생기기 전이라 열차로 모든 것이 움직이다보니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모두 사연이 있어 보였다. 행상도 가난하고 기차를 내리는 이들도 가난하던 시절, 이들의 모습을 잡으면 이 시대의 풍경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찍다보니 여긴 생활터전이 아니라 (사진이) 생활 속으로 들어가진 못하는구나 싶더라. 이들이 사는 모습을 보자고 들어간 곳이 중림동 골목이었다. 처음 가던 날이 복날이었는데 여인네들은 목욕탕으로 몰려가고 아이들은 떠들며 노느라 온동네가 왁자지껄한 것이 어린 시절 살던 사직동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사직동에서 고등학교때까지 살았는데 골목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 식구나 마찬가지였다. 그때를 떠올리며 평생 내 사진 테마는 '골목안 풍경'을 삼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이제는 골목이 사라져가고 있다.

"평생 테마라 했는데 골목이 내 평생보다 먼저 사라지고 있다. 누군가 '골목도 문화유산'이라고 했다는데 이렇게 꼭 골목을 밀어내고 아파트가 들어서야 하는지 안타깝다. 내가 다닌 중림동 행촌동 만리동 도화동 같은 서민 지역에서 골목의 의미는 매우 크다. 골목은 차가 드나들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고 집이 좁으니 골목이 마당이 된다. 고추도 말리고 국수도 끓여서 골목에서 나눠 먹고. 공동체 의식이라고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웃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삶이 있다. 골목은 인간적이고 소박한 삶의 상징이다. 그런데 80년대 후반부터 골목이 사라지기 시작해서 이제는 거의 볼 수가 없다. 이 때문에 나도 이제는 골목이 아니라 서울풍경을 찍고 있다. 피맛골 인사동 청계천을 사진에 담고 있다."

―가난한 동네에 들어간 이방인에게 쉽게 사진 찍는 걸 허락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퍽 힘들었다. 2∼3년을 다니니까 골목에 사는 아저씨처럼 대해줬고 사진 찍는 것이 쉬워졌다. 그래도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는 분들이 많아서 나중에는 아예 라이카 M타입을 쓰기 시작했다. 이 카메라는 우선 작고, 셔텨소리가 거의 나지 않기 때문에 몰래찍기에 최고이다. 그냥 골목을 걸어가면서 노(no)파인더로 찍는데, 숙달되니까 눈으로 보는 것과 똑같다."

―그렇게 오래 한 장소를 찍다보면 친구처럼 지내게 될 것도 같은데.

"미숫가루 타다주던 분도 계시고 밥 먹으러 오라는 분도 계셨고. 그런데 골목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이 다 떠났다. 아파트로 재개발되면 억대에 이르는 잔금을 치를 수가 없다. 지금 중림동에서 그대로 남아사는 사람은 6% 정도밖에 안 된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몇 년 간격으로 똑 같은 사람들을 찍을 수 있었다. 84년에 도화동 꼭대기에서 다섯살 먹은 애를 찍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애를 공덕동에서 10년후에 만났다. 아버지 심부름을 가는 중이었는데 중학생이었지만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애를 다시 도화동 그 자리로 데려가 사진을 찍으면서 떠났던 사람들을 수소문해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의 10년후, 20년후를 한 자리에 모아서 펴낸 것이 '골목안 풍경' 6집이다. 1972년에 중림동에서 많이 찍은 유영애씨 자매는 내가 텔레비전에 출연하자 연락이 와서 29년만에 만났다. 그때는 정말 이산가족을 찾은 듯이 반가웠다. 영애씨는 큰 과수원을 한다며 배즙을 선물로 주었다. 늘 웃음이 가득하고 서글서글해서 동네 아이들과 말다툼 한번 안하던 영애씨가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참 기분좋더라.(그가 늘 드나들던 청자다방의 소녀는 주인이 되었고 시인인 남편이 시집을 낸다고 하자 김씨는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러나 김씨는 이런 교유관계를 입으로 내세우길 싫어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찍었을텐데 그들 중에 유명인이나 스타가 된 사람은 없는가.

"내가 주로 찍은 지역은 청계천을 중심으로 그 아래, 서민들이 살던 남촌 지역이다. 내가 찍던 무렵에도 달동네였는데, 여기를 벗어나 크게 잘된 사람은 없다. 물론 과거에 비하면 아이들의 입성도 좋아지고 얼굴에도 궁핍한 기운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빈곤의 대물림 현상을 실감한다."

―사진으로서 평가하자면 기념사진 같은 것들도 많은데.

"전에는 피사체의 자연스런 모습을 잡는 것을 중시해서 사람들이 카메라를 보고 있으면 작품사진으로 봐주질 않았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기념사진도 좋은 기록이다. 시골에 가면 조그만 사진이 쫙 들어있는 액자들이 있다. 그런 사진을 보면 대부분 카메라를 의식하며 어색하게 똑바로 선 모습들이다. 기계에 익숙치 않은 천진한 모습이 참 아름답지 않은가. 카메라가 개입되는데 자연스러운 척 하는 것보다는 (카메라를) 보고 찍어도, 찍는 나와 찍히는 사람이 교감하는 사진이 좋다. 요즘은 이런 것을 인정하는 추세로 사진경향도 바뀌었다."

―사진이 21세기 예술의 총아로 급부상한다는데.

"하, 글쎄 모르겠다. 그건 아마 '예술사진'에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1950년대만 해도 다큐멘터리 사진이 중요했는데 요즘은 현장사진을 중시하지 않는다. 시대를 기록하는 일인데 이런 태도를 탓할 수야 없지만 기록사진을 무단게재하는 태도만은 좀 고쳐졌으면 좋겠다."(현장사진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과는 달리 김기찬의 사진에 대한 평가는 갈수록 높아져가고 있다. 그는 지난해 이명동사진상을 수상했으며 9월18일부터 한달간 대림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준비중이다. 사진전문미술관인 이곳에서 우리나라 사진작가가 단독초대전을 갖는 것은 처음이다.)

서화숙편집위원 hssuh@hk.co.kr

■"이렇게 가난… 다신 안찍어" 예상밖 반응

김기찬씨는 1988년 첫 사진집 '골목안 풍경'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출판기념회에는 그가 찍은 사진의 주인공들인 중림동 주민들이 초대됐다.

그가 이 주인공들을 초대한 데는 그들 덕분에 사진집이 나왔다는 헌정의 뜻도 담겨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브루스 데이비드슨(70)이라는 미국의 걸출한 사진작가의 출판기념회를 본따보려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

데이비드슨은 로체스터공대와 예일대를 나온 후 라이프지의 프리랜서 사진작가를 거쳐 세계적 사진통신사인 매그넘포토 소속으로 일했다.

그는 미국의 다양한 사회상과 인물군상을 잡은 것으로 유명한데 특히 말콤 엑스의 초창기 활동, 시카고의 철강노동자, KKK단, 남캐롤라이나의 이주노동자 농장, 앨라버마의 인종차별 항의행진 등 미국의 현대사를 생생히 담아왔다. 특히 그는 1966년부터 2년간 뉴욕의 동부 할렘 지역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1970년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이스트 100번가'라는 이름으로 나온 이 책은 도시빈민의 삶을 그린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책 출간과 더불어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사진전도 가졌는데 이때 사진의 주인공이 된 할렘가 주민들을 초청했다. 그리고 이날의 출판기념회 자체가 떠들썩한 잔치로 사진계의 전설이 되어 있다.

김기찬씨도 이를 본떠 중림동 주민들을 초청했는데 막상 현장에서 보인 이들의 반응은 즐거움보다는 경악이었노라고 했다.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부분을 사진에 찍힌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구나'로 받아들였다. '다시는 사진 안찍겠다'고들 했다. 그들이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 다음부터는 사진집을 내도 당사자에게는 전달하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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